한번 앉은자리에서 일을 끝내는 사람들을 보면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닙니다. 자투리 시간 남기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사람을 보아도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저는 무엇을 하든 준비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예를 들어 30분 걸려서 깎을 수 있는 잔디도 마음 준비를 하는 데에만 2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얼마나 아내 복장이 터지겠습니까? 그래서 오래 전부터 잔디 깎는 일은 돈주고 남을 시키고 있습니다.
시원시원한 성격이 못되다 보니 설교 준비에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설교 골격이 다 짜졌으면 타이핑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사실 시작은 그때부터입니다. 집중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설교 타이핑하다가 한 얼굴이 떠오르면 전화 한 번 걸고, 나눔터에 새 글이 올랐나 안 올랐나 또 한번 들어가 보고, 이 메일 새것이 왔나 안 왔나 다시 한번 열어보고. 이러면서 설교 준비를 하니 시간이 안 걸릴 수가 없습니다.
컴퓨터와 노트북에서 게임은 다 삭제해 버렸습니다. 설교 준비하다가 '잠깐 쉬었다 해야지'하고 컴퓨터 게임을 시작하면 한번만 하고 끝내지를 못 내기 때문입니다. 마치 설교 준비가 끝나면 큰 일이라도 생길 것처럼 사생 결단하듯이 게임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토요일은 가장 압박감을 느끼는 날입니다. 설교 준비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백인영 자매가 주보를 만들 수 있도록 목회자 코너, 설교 제목, 찬송가 장 수 등을 선택해서 주어야합니다. 박연희 자매가 (현재는 박지영 자매) 설교 요약을 만들고, 이범노 형제, 이정보 자매, 김애자 자매가 주보를 접어서 같이 주보함에 넣을 수 있도록 설교 요약을 작성해 주어야합니다. 백연숙 자매에게 영상판에 띌 성경 인용 구절을 정해서 통보해주고, 곡희진 자매에게 동시 통역에 사용할 설교 본문과 영어 성경 인용 구절을 만들어 보내주어야 합니다.
준비가 늦어져서 백인영 자매가 퇴근을 못하고 기다리던지, 박연희 자매가 일찍 와서 요약 작성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더 집중이 힘들어집니다. 다녀온 화장실에 다시 한 번 다녀오고, 훑어본 주보함도 다시 한 번 체크해보고, 편지 도착할 시간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 편지함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그러다가 사무실에 가서 괜히 기웃기웃 서성댑니다. 그러면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자매님들이 웃습니다. '목사님, 설교가 안 짜지는 모양이다!'
'위대한 예술 작품에는 창조의 고뇌가 들어가는 법이야. 정해진 시간 내에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상품이지 예술인가? 설교는 예술품 같아서 낭비로 보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야. 아암, 그렇고 말고.' 토요일에는 이런 말로 끊임없이 저 자신을 위로하며 서성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