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노래로 인한 구설수에 자주 오릅니다. 침례 간증을 할 때에 어떤 형제가 설교 전에 제가 찬양을 인도하는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들으면서, 설교는 괜찮은 편인데 노래는 되게 못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또 어떤 자매님은 간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목사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저처럼 음치이기 때문입니다.”
음향 담당자들은 제 음질이 독특해서 (나빠서?) 음향 조절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음 영역이 테너도 아니고 베이스도 아니고 어중간합니다. 그렇다고 바리톤이라고 할 만큼 성량이 풍부하지도 못합니다. 노래할 때에 감정을 넣지 못하고 ‘장작 패듯이’ 기계적으로 노래한다고 아내는 핀잔을 줍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릴 적에는 노래를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네댓 살 적 외조부님이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셨는데, 집에 손님이 오시면 조부님이 봉직하셨던 연희 대학, 이화 대학 교가로부터 시작하여 짤막한 영어 노래까지 불러서 손님들을 즐겁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육이오 전쟁으로 인하여 정식 음악 교육을 받거나 악기를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음악 교육이라고 하면 진해에서 해군 장교로 근무할 때에 유치원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유치원 피아노로 바이엘을 연습한 것이 다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화려한 지휘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에 교회 학생회 성가대 지휘를 맡았습니다. 신학생이었던 지휘자가 졸업한 후에 후임을 찾을 수가 없을 때에, 악보를 읽고 정확한 음을 낼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그 사역이 제게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찬송가를 파트 연습시켜서 4부로 부르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절친한 친구가 공과 대학 학생회장이 되었습니다. 가을 대학 축제 때에 공대에서는 합창단이 공연을 하는 데 이 친구가 청해서 명동에 있던 시공관(얼마 후 국립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음)에서 지휘 공연을 하는 특권을 누린 적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는 대학원 때에는 다니던 작은 교회에서 남성 4중창단을 구성해서 예배 때마다 특별 찬양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교인 숫자가 증가했을 때에는 성가대를 조직하여 몇 년간 성가대 지휘를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지휘 공연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제가 굉장한 음악인이나 되는 것처럼 우리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분이 있습니다. 또, 성도 중에는 제가 절대 음감을 가졌다고 말해주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런 탁월한 음악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절대로 음치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