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싫어하는 것 둘이 있습니다. 설교 시간에 조는 것과 약속 시간에 늦는 것입니다.
설교 중에 조는 사람이 싫은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종의 모욕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서 들어줄 수가 없어!” 이런 메시지를 몸으로 전달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본인이야 몸이 피곤하든지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받는 느낌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둘째로는 게으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깨어 일할 때에 자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입니다. 남들은 경청하고 있는데 꾸벅꾸벅 조는 것을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열심히 하지 않을 것 같은 게으른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목회자 세미나 때에도 이런 부탁을 합니다. “졸음과 싸우는 모습을 보면 제가 너무 힘이 듭니다. 졸리실 때에는 뒤쪽으로 가서 서서 강의를 들으시든지,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오시든지, 물을 마시고 오십시오. 수업 중간에라도 괜찮습니다.” 한국이라든가 먼 곳에 오신 분들 중에 시차 적응이 안 되어서 조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간에 늦는 사람을 싫어하는 데에도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무례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약속을 하고 늦게 나타나서 상대방을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무례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강의나 예배와 같은 공적 모임에서도 그렇습니다. 한참 예배나 강의가 진행 중인데 분위기를 깨고 도중에 장내에 들어선다는 것이 무례하게 느껴집니다. 둘째는 교만하게 느껴집니다. 강의나 예배 시간은 공적으로 약속한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무시한다는 것은, 약속은 남이나 지키는 것이고 자신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교만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분이 나눔터에 글을 올렸습니다. 은행에서 일하는 어떤 분이 사내 게시판에 올려 직원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아들에게 들려주었던 충고랍니다. 여러 개의 충고 중에 첫 번 것이 이것입니다. “1.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하고는 동업하지 말거라.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모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금년 333 기도 제목이 제가 마음 푸근한 사람이 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부탁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마음이 푸근하지 못해서입니다. 금년 말쯤 되면 여러분들이 기도 덕분에 마음이 푸근해져서 싫은 사람이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저를 돕는 의미에서 설교 시간에 졸지 말고 예배나 강의 시간에 늦지 말아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