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가 원활하게 돌아가기위해서는 ‘가정교회 3축’이 원활하게 돌아가야 합니다. 이 3 축 중의 하나가 삶 공부이고, 전체 삶 공부의 시작과 뿌리가 되는 것이 첫 번째로 제공되는 ‘생명의 삶’입니다.
생명의 삶이 처음 개발되었을때에는 성령님에 관해서 강의만 하고 끝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령님은 체험할 수 있는 분인데 이처럼 강의만 하고 마쳐도 되는가?” 그러나 삶 공부 수강생들이 성령 체험을 하도록 도울 방법이 안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미국 목사님이 저술한 성령 사역에 관한 책에서 이런 내용을 읽었습니다. 청소년 집회을 인도할 때 단순하게 “Come Holy Spirit!” 했더니 성령님이 임하시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성령님)께 여쭈었습니다. “제가 ‘성령님 임하시옵소서!’ 해도 임해 주실 것입니까?” 그랬더니 성령님이 그러겠다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에 관해 공부한 다음 주일에 ‘성령 체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하루 금식을 하되 정 힘든 사람은 저녁 금식만 하고, 약 30분 간 성령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는데 이것이 생명의 삶 코스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성령체험 시간은 스트레스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수강생들이 성령체험을 하지 못하면 어쩌냐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성령체험이 심리적인 조작이 아닐까는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심리적인 현상을 성령체험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심리적인 조작에 기여할 수 있는 요소를 모두 제거하였습니다. 분위기에 휩쓸려 감정적으로 격해 진 것을 성령 체험으로 착각할까 봐 배경 음악을 깔지 않기도 했고, 제가 안수 기도를 해 준 사람들이 성령 체험을 했다는 수가 많아서 안수 기도를 안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배경 음악을 깔 건 안 깔 건, 안수를 하던 안 하던, 성령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쓰러지기도 하고, 방언이 터지기도 하고, 치유받기도 하고, 오랜 악습에서 자유스러워지기도 하였습니다.
성령 체험 시간에 스트레스 받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성령체험’의 정의 때문이었습니다. 성령 체험이 무엇인가? 쓰러진다든가 몸이 뜨거워지는 것이 성령 체험인가?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경험하지 못하면 성령 체험을 못한 것인가?
그러나 성령체험 시간을 반복하면서 하나님께서 서서히 답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성령체험이란 특정 현상과 상관 없이 성령체험 시간 후에 생기는 변화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인간의 영 혼 육(靈 魂 肉)을 언급하고 있습니다(살전 5:23). 이 세 가지를 지나치게 확연하게 구분할 때 신학적인 오류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생명의 삶에서는 교육의 도구로서 인간에게는 세 영역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자연세계와의 관계는 육에 속한 5감(5感)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인간과의 관계는 혼에 속한 지정의(知情意)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고 가르칩니다.
성령체험은 성령님이 우리의 영을 터치하시는 것인데, 이 체험이 강렬하면 혼의 영역에 속한 감정이 크게 영향을 받아 반응하기도 하고, 육신이 반응을 하여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영을 터치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런 현상이 수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성령 체험 시간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그 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믿어졌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 체험 시간에는 구경군이었는데, 끝난 후 담배를 피우려니까 구역질이 나서 더 이상 못 피우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령체험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많은 분들이 성령체험을 하고도 모르는 이유는 성령체험에 대한 선입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정한 느낌이나 현상이 있어야만 성령체험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지 않을 변화를 맛보는 것이 성령 체험입니다.
성령체험은 성령충만의 결과입니다. 성령충만 하지 않고는 주님의 사역을 할 수도 없고, 신앙생활을 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충만은 가끔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크리스천 삶의 기본이며 당연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충만케 하실 뿐 아나라, 당신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목회자를 포함한 많은 성도님들이 성령님의 나타나심을 기대하지 않거나, 성령님의 나타나심을 특별한 현상과 관련지어 생각하기 때문에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