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 핵심가치 중의 하나가 목회자와 성도 간의 성서적인 사역 분담입니다(가정교회 4 기둥 중에 3번째 기둥). 이 핵심가치의 근거가 되는 에베소서 4:11~12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 사역자(목회자)의 역할은 성도를 준비시키는 것이고, 봉사(목양)의 일과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세우는 일은 성도의 몫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목양이 성도의 사역이기 때문에, 성경적인 교회를 추구하는 가정교회에서는 평신도인 목자 목녀가 목양을 합니다. 그러나 목양은 목사만의 전유물이라는 전통적인 사고에 젖어 있다가 목양을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동기부여를 해주기 위하여 목회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 의무감과 죄책감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무감과 죄책감에 떠밀려 하는 사역은 오래 안 가고 탈진해서 주저 앉게 만듭니다. 사역에 보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사역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스스로 사역을 선택하게 만들고, 사역을 전적으로 위임해 주어야 합니다. 인간은 남이 시켜서 하는 일보다 자신이 선택하여 할 때에 에너지가 솟습니다. 또 믿고 위임해 주었을 때 책임감이 생겨서 능동적으로 일하게 됩니다.
유능한 사람들과 더불어 일할 때에 위임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도달해야 할 목표를 제시해 주고,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해주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해야 이들의 역량이 극대화 됩니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에게 위임이 힘든 모양입니다. 교회에서 탁월한 평신도 사역자들이 키워지지 못하는 이유는, 유능하고 신실한 성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담임 목사가 이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위임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 목회자들은 일반 목회자들에 비하여서는 위임을 잘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위임을 힘들어 합니다. 목장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담임 목사가 직접 끼어 들든지, 부목사를 대기시켜 놓았다가 뒤치다꺼리를 시킵니다. 목자 목녀들이 미덥지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위임해 주지 않으면 가정교회가 꿈꾸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평신도 사역자를 키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위임한다고 해서 목자 목녀에게 사역을 즉시 일임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위임은 목자 목녀의 성숙도에 비례해야 합니다. 성숙치 못한 목자 목녀에게 성급하게 사역을 위임하면 목자 목녀들이 감당하지 못해서 탈진에 빠집니다.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연습해 보도록 하면서, 점진적으로 맡겨야 합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제가 저술한 ‘가정교회에서 길을 찾는다’에서 성승현 국제 가사원 북미 총무가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바르게 위임하기 위해서는 동기가 중요합니다. 어떤 리더들은 위임을 하기는 하는데, 자신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없고 여력이 모자라 위임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리더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잘 알고 무엇이든지 잘 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위임받은 사람이 하는 일에 만족을 못합니다. “내가 시간만 있으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되고, 이런 생각은 언행으로 표출됩니다. 그러다 보니 위임 받은 사람은 리더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질책 당하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일만 하고,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거나 창의력을 발휘하여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바른 위임은 자신의 약점과 단점을 인식하고 있는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약점과 단점을 잘 아니까 이를 커버해 줄 사람을 찾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자신이 못하는 것을 잘하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저절로 칭찬의 말이 나오게 되고, 더 이상 같이 일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나 싶어서 대하는 태도에도, 사용하는 언어에도, 조심하게 됩니다. 위임받은 사람 쪽으로는 리더가 못하는 일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 리더가 자신을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니까 충성하게 됩니다.
교역자이든 평신도이든 이들이 잠재력을 100%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담임 목사는 사역의 목표를 제시하고, 사역의 경계를 정해주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결정하고 활동하도록 위임해 주어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고 진행 상태를 점검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일에 끼어들어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겠다고 하면 다소의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서라도 허락해 주어야 합니다. 실수를 하더라도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면 질책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수가 두려워서 전전긍긍하는 사람에게서는 창의력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