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대로 살면 어떤 사람이 될까?
남성은 ‘신사’가 되고 여성은 ‘숙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실하고, 책임감 강하고, 유머 감각이 있고, 여성을 희생적으로 보호하려는 남성. 이것이 참된 신사 모습 아니겠습니까? 남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남을 세워주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여성. 이것이 진정 숙녀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종교 권에는 없는 ‘기사도’가 서구에서 생겨났고, 기독교가 흥왕할 때 영국에서 ‘신사도’가 형성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기사도라든가 신사도를 케케묵은 구시대적 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TV 역사 드라마에서 보듯이, 역사가들은 현대적인 시각에서 역사를 해석하고는 이를 재구성해서 역사를 왜곡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기사도’라든가 ‘신사도’ 같은 것도 현 시대에 맞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해 버리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성경적인 아름다운 개념입니다.
기사도나 신사도와 더불어 폄하되는 것이 예절입니다. 예절을 위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까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절의 핵심은 사랑이고, 배려입니다. 길을 걸어가다가 몸을 부딪쳤을 때에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죄송합니다” 한 마디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표현입니다. 핵심이 빠지고 형식만 남을 때 위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진정한 의미의 신사숙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신사숙녀보다는 자기중심적이고 무례한 사람들로 인식되는 것을 볼 때, 안타깝습니다.
친교실 게시판에서 교회 주차장에 무절제하게 주차해 놓는 차들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주차선상에 주차하여 두 개 공간을 차지하기도 하고, 잔디밭 위에 주차하여 잔디를 손상시키기도 하고, 주차 금지 지역에 주차하여 서비스 차량이 접근하지 못하게도 해 놓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접촉 사고를 내고도 연락처를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사숙녀답지 못한 행동입니다. 이런 모습을 접하면 예수님 닮자고 열심히 부르짖은 결과가 이건가 싶어서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신사숙녀는 정직합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예절을 지킵니다. 약속 시간을 지킵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집니다. 한 마디로 멋진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는 다 신사숙녀가 되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멋진 사람들이라고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