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면서 모든 것이 정확해야 하는 사람들은 피곤합니다. 인생에 모순이 많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두루 뭉실 사는 사람들도 피곤합니다. 삶에 질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너무 피곤하지 않게 살려면 정확할 때에 정확하고, 두루 뭉실 해야 할 때에 두루 뭉실 해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대로 이런 균형이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확을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회원교인이 될 때입니다. 반드시 소정의 절차를 거칠 것을 요구합니다. 333기도나 금식 기도 요원을 모집할 때에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두루 뭉실 넘어 가지 않고 기간을 정하고 신청을 받습니다.
그러나 두루 뭉실 넘어 가는 때도 있습니다. 목장 분가할 때입니다. 분가는 대행 목자가 임명을 받은 후에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분가를 먼저 하고 임명 신청을 해도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분가가 급하다면 절차에 어긋나도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규칙은 반드시 있어야합니다. 규칙 없으면 자유스러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신호등의 빨간 불은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빨간 불에서 서고, 파란 불에서 가고, 노란 불에서 멈춘다는 교통법규가 교통을 원활하게 해줍니다. 정전으로 인하여 교통신호등이 작동을 안 할 때에 교통이 밀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사역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하여서는 법규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책임과 권리의 한계를 모르니까 사역자들 간에 갈등과 충돌이 야기 됩니다. 규칙이 있을 때에 오해나 갈등이 줄어들고 사역이 원활히 돌아갑니다.
그러나 규칙이 너무 많으면 안 됩니다. 교회법을 갖고 싸우는 교회를 보면 법을 교통 정리하는 정도로 간단히 만들지 않고 너무 상세히 만들었기 때문인 수가 많습니다. 사역의 충돌을 피할 정도로 단순히 만들지 않고 규제하고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다 보니까 만사에 법을 찾게 되고, 분쟁이 생기게 되고, 사역은 뒷전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사역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하여서는 교회에 규범이 있어야합니다. 또 정해진 규범은 지키려고 노력해야합니다. 그러나 교회 수칙이 창의력을 죽일 정도로 너무 많거나 상세해서는 안 됩니다. 사역과 책임의 한계가 어디인지 분명히 알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들어 주되, 마음이 뜨거운 사역자가 창의력을 발휘하여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여유와 신축성을 허락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