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면서 세상에 물들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저도 사회생활을 해 보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하나님의 가치관을 갖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압니다. 그러나 ‘지킨다’라는 단어가 암시하듯이 이러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가 신앙생활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6.25가 발발했을 대에 저는 여섯 살이었습니다. 9. 28 서울 수복 전날 밤 서울 사직동에 소재한 방공호에 증조할머님과 숨어있었습니다. 멀리서 대포 소리가 쿵하고 들리면 공기 째지는 소리가 들리며 가까운 곳에서 포탄이 꽝 하면서 터집니다.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에 느꼈던 두려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방공호 속에 엎드리고 숨어 있는 사람보다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 포탄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덜할 것 같습니다. 포탄을 쏘아대는 포대를 점령하기 위하여 돌격하고 있는 전투병에게는 두려움이 훨씬 덜할 것 같습니다. 도망치면 더해지고 마주 싸우면 덜해지는 것이 공포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숲을 걷다가 예상치 않게 뱀이 나타나면 우리는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잡기 위하여 찾다가 만난 뱀은 두렵지 않습니다. 공포의 대상은 피하면 더 두려워지고, 직면하면 덜 두려워집니다.
타락된 사회에서 살면서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믿음을 지키려하는 것은 수동적 자세입니다. 이런 자세로 사는 동안에는 믿음을 지키다가 왕따를 당하든지, 세상 사람처럼 살다가 믿음을 저버려야할 것 같은 두 가지 선택 틈에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적극적으로 임해야합니다. 소극적으로 세상에 물들지 않으려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려해야합니다. 일터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킬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일터를 복음으로 바꾸어 놓으려해야합니다. 술자리에서 술을 거절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술 먹지 않고 즐거울 수 있는 회식 문화를 정착시키려고 해야 합니다. 수동적이면 패배합니다. 능동적일 때에 승리합니다. 달리지 않는 자전거에 앉아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애써보았자 잠시 후에 반드시 쓰러집니다. 힘차게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가면 옆으로 쓰러질 염려가 없어집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려면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야합니다. 세상으로부터의 오염을 두려워말고 복음으로 세상을 개조하려해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에 집중 말고 이웃의 믿음을 키워주는 데에 집중하여야합니다. 두려움은 피해서는 안 됩니다. 직면하여 정복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