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수준 높은 작품은 아니었지만 미국 기독 고등학교가 배경이라고 해서, 목사 된 입장에서 의무감을 느껴 대여해 보았습니다. 요즈음 기독교인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그러하듯이 이 영화에서도 기독인들은 독선적인 위선자로 그려지고, 불량 학생이나 동성애자는 상식이 통하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영화중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믿음 좋은 주인공 여학생이 차 사고를 당합니다. 이 여학생은 몸이 다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때 한 친구가 비아냥댑니다. “하나님이 살아있다면, 아예 차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해주어야지, 다치지 않게만 해주냐?”
기독교를 비방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믿는 우리들도 유사한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사고를 아예 안 당하게 해주시고, 병에 아예 안 걸리게 해주시고, 역경이 아예 안 생기게 해주시면 더 좋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못하실 것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 하십니다.
종종 말씀 드리지만 인생은 1생이 아니고 3생입니다. 모태에서 9개월이 제 1생, 이 세상에서의 약 90년이 제 2생, 그리고 죽음 후에 누리는 영생이 제 3생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영원한 제 3생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 2생을, 제 3생을 누릴 수 있는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훈련장으로 사용하십니다.
세상은 죄로 인하여 파괴되었기 때문에 사고나 재난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 이러한 것들을 경험하게 하셔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어가십니다(롬 8:28). 새로운 삶을 사는 계기로 삼기도 하시고, 예수님 닮게 만드는 도구로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감당치 못할 정도의 시험은 절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감당 못할 것 같으면 피할 길을 주십니다(고전 10:13).
앞서 언급한 영화에서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안 다치게 해 줄 것이 아니라, 사고가 안 나게 해 주어야지!” 비아냥대는 장면에 속이 상했지만, 실제 상황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많은 사고에서 지켜주셨고, 이번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사고를 허락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 자신도 성도들에게 큰 사고와 재난이 닥치면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이 생기도록 두시나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도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