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제 신앙적으로 철이 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진정으로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부르기만 해도 좋아서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납니다. 좋고 아름다운 형용사 최상급을 모두 동원하여 하나님을 불러도 절대 과장이 될 수 없다는 느낌입니다.
제 이런 모습이 신기합니다. 저는 소심한 성격이라 누구를 턱 의지하지 못합니다. 또 소극적인 성격이라 누구를 적극적으로 사랑하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무턱대고 믿고, 무작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러나 참 행복합니다.
이런 신뢰와 사랑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시작은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게 되는 것에서 비롯했습니다. 그전에 예수님을 인생의 주님으로 영접한 후에 물론 기쁨과 평안은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용서 받은 죄인 이상으로 생각하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셨을 뿐만이 아니라 나를 의롭게 보아주신다는 사실이 믿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면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나를 좋아하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 계시록 마지막 장 마지막 절까지 완전히 지키는 의인처럼 보인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나도 하나님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기도의 확신도 생겼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좋아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리가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기대했던 대로 기도응답이 오지 않아도 실망이 안 됩니다.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고난 가운데에서도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좋아하시는 하나님께서 쓸데없는 고통을 주실 리가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고난 후에 좋은 일이 생기리라는 기대가 생깁니다.
이제 성경이 진정으로 이해가 갑니다. 신학적으로 이해되지 않던 바울 서신의 여러 부분들도 이해가 갑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연애를 해본 사람만이 연애소설을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나는 60이 넘어서야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알게 되었지만, 우리 교회 성도들은 좀 더 일찍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