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남매가 있습니다. 아들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고 딸은 휴스턴에 삽니다. 아들 쪽으로는 손녀 하나를 두었고, 딸 쪽으로는 손녀 하나에 손자 둘을 두었습니다.
갓 네 살 된 외손녀 엘리(Ellie, Elizabeth의 준말)가 처음 본 손자손녀이기도 하고 가까이 살기 때문인지 제일 예쁩니다. 저를 따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긴 여행이라도 마치고 돌아오고 오면 “I missed you Grandpa(할아버지 보고 싶었어요),”하며 꼬옥 안기고, 식탁에 앉으면 “I want to sit with Grandpa(할아버지 옆에 앉을래)” 하면서 착 달라붙습니다. 어른이고 애고 따르는 사람이 예쁜 것 같습니다.
요즈음 엘리에게 엄마가 어린이 성경을 읽어주는 모양입니다. 신학적으로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에 등장하는 사울이 왕이 된 이유를 물어보면 “People wanted a king they could see(눈으로 볼 수 있는 왕을 원했어요.)” “그런데 사울이 어떻게 되었지?” “He disobeyed Jesus(예수님에게 불순종했어요.)” (삼위일체에 절대적인 신앙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하나님과 예수님을 자유자재로 바꾸어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어?” “He made a little boy, David, a king(작은 소년 다윗을 왕으로 세웠어요.)”
그런데, 그런데, 요렇게 예쁜 것이 ‘죄인’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의도적으로 더 합니다. TV 화면에 손을 대지 말라고 하면 내 눈치를 살살 보면서 손을 가까이 가져갑니다. “엘리, 손대면 안 되지!”하면 “I didn't touch it(아직 손은 안 댔잖아요?)” 요럽니다.
지난 월요일 우리 집에 왔을 때 엄마랑 한바탕 했다고 아내가 전했습니다. 말을 안 들어서 엄마가 방구석에 가서 혼자 앉아 있으라고 한 것이 발단이었답니다. (time-out이라고 해서 잘못하면 방 한 구석에 혼자 앉아있어야 합니다.) attitude(태도)를 바꾸어야 벌을 풀어주는데, 태도를 바꾸겠다고 하면서도 안 바꿔서 이날은 무조건 5분 앉아 있으라고 엄마가 말한 모양입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태도를 바꾸었는데 엄마가 더 앉아있으라고 했다고 울고불고 소동을 벌였답니다. 진정이 된 후에 할머니한테 용서를 빌라고 하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또 울고불고한 모양입니다. 허, 참, 요런 조그만 것 속에 반항심과 자존심이 숨어 있다니!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 말이 실감이 갑니다.
그런데 아내로부터 이런 얘기를 전해 들으면 벌 받아서 싸다 싶으면서도, 고집 피우고 반항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신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