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사는 아들 선일이가 며느리 지은이와 같이 와서 1주일 동안을 같이 지냈습니다. 휴스턴에 사는 딸 선주와 사위 의준(Peter)까지 합쳐 1년만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넓어서 얼굴을 대하고 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매년 성탄절은 휴스턴에서 모이는 것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아들과 딸 내외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 우리 부부는 신혼 초에 싸우기도 많이 하고 다투기도 많이 했는데. . .
결혼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내 눈에는 애들로 보입니다. 아들이나 딸 부부가 나란히 침실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아직도 기분이 묘합니다. '떨어져서 자야한다!' 한 마디 해주어야할 것 같은 충동을 느낍니다.
가족들이 모이면 옛날 얘기를 하면서 낄낄댑니다.
선일이가 태어났을 때에 저는 세상에서 그처럼 예쁜 아기를 처음 보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찍은 사진을 가족과 친지들에게 돌렸는데 이상하게도 예쁘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로는 괜찮게 생겼다.' 이모가 해준 이 말이 최고의 찬사였습니다. 이상하기도 하고 분개도 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후에 사진을 보니까 얼굴이 울긋불긋한 것이 마치 원숭이 같고 내 눈에도 안 예쁘게 보였습니다. 지금도 아기를 나아서 '우리 아기 예쁘지요?' 하면서 기대어린 눈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새 엄마 아빠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선주가 데이트를 할 때에 자정까지는 집에 돌아오는 규칙을 정했습니다. 거실에 앉아서 자지 않고 기다렸다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야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꾀가 났습니다. 자명종 시계를 시간에 맞추어 현관에 갖다놓고 자다가, 자명종이 울리면 그때에 일어나서 앉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자명종이 울리기 전에 대부분 들어왔기 때문에 자다가 깨어야했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주가 고백을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자정 직전에 들어와서 자명종을 끄고 다시 나갔다는 것입니다. 데이트하던 남자와 결혼해서 이제 잘 사는데 야단을 칠 수도 없고 해서 웃고 말았습니다.
금년에는 세뱃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거꾸로 어른들에게 세뱃돈을 바치는 습관을 들이라고 했더니 외할머니에게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바쳤습니다. 그런데도 엄마 아빠에게서 세뱃돈을 받지 못하는 것이 못내 섭섭한 모양입니다. 자신들이 성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가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