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카드를 써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카드 쓰기를 포기하고 카드를 안 보내기 시작한지 10년이 넘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도 더 이상 사지 않습니다. 산에 가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다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어가며 장식도 하고, 벽난로에 양말을 걸고, 문에는 사철나무 화환을 걸어 놓아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려고 노력했던 것은, 자녀들에게 크리스마스에 관한 좋은 추억을 심어주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장성해서 결혼해 나가니까, 더 이상 필요를 안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크리스마스를 시큰둥하게 보내지만, 어릴 때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추억을 심었던 절기였습니다. 부산 피난 시절,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교회 성가대원들이 찾아와 문 앞에서 캐럴을 부르면 잠이 깼습니다. 그리고는 머리맡에 놓여 있는, 지금 같으면 별 것 아닌 작은 선물- 초콜릿 하나, 미제 장난감 자동차 한 개에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중학생 때 남녀 학생들이 만나면 어른들이 ‘연애한다’고 호통을 치곤 했습니다. 이성과 만나 대화라도 할 수 있는 곳은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엄한 어른들이 성탄절 전야에는 밤을 새가며 노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까까머리를 하고 고등학교 형들이나 누나들이 새침을 떼고 점잖을 부리면서도, 재미있게 게임을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하던 시절이라 크리스마스 연극을 해도 특별한 의상이 없었고 어른 옷이나 잠옷을 입고 공연을 했습니다. 음악 발표 때에도 동원되는 악기란 풍금이나 피아노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TV를 비롯한 오락 기구가 없던 때라, 이런 발표회는 1년 내내 기다려지는 큰 행사였고, 이에 관한 즐거운 추억이 오래오래 남아 있습니다.

요즈음 어린이들이 장성하면 크리스마스에 대해 무엇을 기억할까? 나처럼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면,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가슴이 저려올까? 아닐 것 같습니다. 재미난 일이 많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공연도 하나의 행사에 지나지 않고, 풍요함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선물도 수없이 받는 선물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힘들거나 고생 했던 기억이 더 추억으로 남습니다. 평안했던 여름휴가 기억보다 고생했던 기억이 더 오래 남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작은 기쁨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