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터에 올렸기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지난 번 일본 방문은 저를 흥분케 했습니다. 일본인 목회자를 대상으로 첫 번 목회자를 위한 세미나가 개최되었는데, 일본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이벤트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인구 당 선교사 숫자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데, 열매는 가장 적은 곳입니다. 종교 자유가 허락된 곳에서 기독교 인구가 1%가 안 된다는 것은 (개신교는 0.5%) 거의 기적에 가깝습니다. 교세도 약해서 평균 교인 숫자가 31명입니다.
이러한 전도의 불모지에서 가와사끼 초대(招待) 교회의 조남수 목사님은 가정 교회를 시작하여 지난 해 20명에게 장년 세례를 주었습니다. 절대 다수의 일본 교회가 1년에 단 한 명에게도 세례를 주지 못한다는데, 놀라운 일입니다. 이번에 일본에서 처음 주최된 세미나를 기점으로 영혼 구원의 물결이 일본 전역에 일게 되지 않을까, 마음이 설렙니다.
이번 일본 방문이 저에게는 처음이었습니다. 놀랐던 것은 문화적인 사소한 차이 외에는 우리나라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간증을 들어보아도 그렇고 대화를 나누어 보아도 그렇고, 같은 일에 기뻐하고 같은 일에 슬퍼합니다. 행인들의 외모만 보아서는 내가 동경 거리를 걷고 있는지, 서울 거리를 걷고 있는지 분간조차 안 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런 성향을 인종 차별로 발전시킨 것은 히틀러같이 지배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제 강점기를 들먹이며 일본을 향한 증오심을 부채질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못된 짓을 한 사람들은 일본 사람이라기보다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꾸로 우리가 일본을 점령했다면 우리는 그들보다 나았을까요? 외국인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가 인터넷에 뜨면, 외국인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하여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어쩌면 일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한 것보다 더 악한 짓을 그들에게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외국인을 증오하는 것이 마치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것처럼 부추기는 국수주의자들과 사이비 민족주의자들을 경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한 형제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죄로 인하여 분열되었습니다. 분열된 인류를 다시 하나로 만들기 위하여 주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민족이 하나라고 선포합니다(갈 3:28). 온 인류가 하나라는 것을 의식할 때 비로소 선교가 의미를 갖습니다. 집 나간 자녀로 인해 마음 아파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잃어버린 형제자매를 찾아 나서는 것이 선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