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데이트 하던 시절, 나 자신을 가족에게 소개해야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꽃을 사들고 무조건 쳐들어가서 장모 될 분께 큰 절을 넙죽하고 혜순이 남자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장모님이 딸에게 이렇게 물었답니다. “너는 어떠니...? 나는 좋다!” 처음 보는 순간부터 장모님은 저를 좋아하셨습니다. 저도 표정이 밝으시고, 마음이 맑아 보이는 장모님이 좋았습니다.

두 번째 아이 딸 선주를 출산하는 것을 계기로 장모님은 미국에 오셔서 우리와 살면서 선주를 키워주셨습니다. 얼마 전 아들 선일이와 딸 선주를 모아놓고 물었습니다. “야, 너희들 어릴 때에 아빠가 너희들에게 상처 준 것 있냐? 있으면 용서를 빌고 싶어서 그런다.” 부모가 의식하지 못하면서 자녀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는 내용의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둘은 생각해 보더니 그런 기억이 없다고 했습니다. 선주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의 어린 시절은 행복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꽤 괜찮은 아버지였구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영어부에서 설교할 기회가 있었을 때에 선주가 한 말을 전했습니다. 마침 딸은 그 주일에 탁아실에서 봉사하느라고 이 설교를 못 듣고 친구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후에 내게 와서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빠, 너무 자부심 갖지 마세요. 내가 행복한 어린 시절을 가졌던 것은 할머니 때문이에요!”

젊은 시절 부부가 티격태격 하면 장모님은 딸 대신에 항상 사위인 내 편을 드셨습니다. 그래서 장모님이 더 좋아졌습니다.

장모님은 호기심이 많으십니다. 관광지라도 방문하면 “나는 쉬고 있을 테니 너희들만 다녀와라” 하시는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사람 가는 곳이면 다 가셨습니다. 그리고 “아아!” “오오!” 감탄을 연발하시기 때문에 구경을 시켜 드리는 것이 신이 나곤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종이로 백조 만드는 법을 배우셔서 밤을 새어가며 종이를 접고 풀칠을 해서 친척과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장모님은 어린이 같이 순진한 영을 소유한 분이신 것 같습니다. 아기들이 장모님을 싫어하거나 피하는 것을 못 보았습니다. 장모님 영이 맑으시니까 아기들이 감지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장모님이 금년에 팔순이십니다. 내 눈에는 아직도 60대로 보이는 데 말입니다. 저는 어릴 적에 부모님을 잃어서 “어머니”라고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수십 년을 같이 살면서도 어색해서 “어머니”라고 부르지를 못합니다. 여전히 “장모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장모님을 통하여 저는 어릴 때 맛보지 못한 어머니 사랑을 맛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