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터에 올랐던 글인데 가정 교회 토론방에만 들어와 보시는 목회자님들을 위하여 올립니다. 제 저서 '목사가 알고 싶은 성도의 속 마음'에 실리려고 했는데 편집 과정에서 이 글을 비롯하여 성도들이 써준 모든 글이 다 누락되었습니다. 성도들의 속마음을 알고 싶으면 성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야할 것 같은데. . . '아첨성' 글처럼 보여서 역효과가 생길 것이라는 편집장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도의 속마음을 알기 위하여서는 성도 자신의 말을 들어 보아야할 것 같아서 여기에 옮깁니다. - 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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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이 희생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신다. - 목사님은 항상 교인들보다 더 손해 보시는 것 같다.
이것을 좀 다르게 표현하면, 교인들은 목사가 자신보다 더 편한 것을 못마땅해 하는 경향이 있다. 조금만 목사가 자신보다 더 무엇을 챙기거나, 어디에 집착을 보이면, 금방‘목사가 뭐 저래'‘신도라면 몰라도 목사가!…'등등 해가며 목사가 믿음에서는 물론 일상생활에서 자신들보다 더 희생하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하고 이를 목사가 보여 줄 때, 비로소 '저 목사는 최소한 나보다는 낫구나' 또는 ‘배울 것이 있다'라고 생각하며 따르게 되는 것이다.
최 목사님은 여러 가지 면에서 목사가 성도보다 더 손해보고 사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예를 들면,
1) 원래 다니던 직장보다 목사가 된 후 월급이 훨씬 적은 점
2) 담임목사로서 월등히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음에도 다른 교육목사나 전도사와 월급이 같은 점,
3) 새벽시간의 달콤함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자신에 비해 목사님은 매일 새벽 3시간이나 기도하는 모습
4) 매일 8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거의 13-14시간 교회에 있다 저녁 늦게야 퇴근하는 모습 (?) 가정생활이 거의 없다.
5) 매일 배불리 먹는 자신들과는 달리 금식을 많이 한다(?). 배가 훌쩍 들어가고 어깨가 구부정하다.
· 화려한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을 보이시며 기도하시는 모습에서 하나님과 상의하여 모든 일을 어련히 잘 알아서 하시겠나하는 믿음과 신뢰가 생긴다. 설사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런 신실한 믿음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와서 ‘당신이 말하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분명히 들어 줄 테니, 그 하나님께 내 기도도 좀 해 주시려우?'하고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부탁하고 싶은 생각이 들것이다. 구겨진 바지는 기도하는 목사님의 상징이다.
· 설교할 때, 늘 말투(tone)가 설득 조이므로 잘못을 지적하는 것인데도 야단치는 것이나 비난으로 들리지 않고, 성경말씀에 기초하여 절제된 인내와 치밀한 합리성을 가지고 이건 이러이러하고 저건 저러하니 이렇게 해야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타이르는 식이니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고, 거기에 덧붙여, 그럼 실생활에서는 이런 식으로 해봐라하고 실제 적용 사례를 들어가며 가르쳐 주므로, ‘그럼 그렇게 한 번 해 봐야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같은 말이라도 tone이 다르면, (ex.당신들은 왜 이렇게 밖에 못하고, 저건 저렇게 밖에 못하냐고 하면) 질려서 해 보기도 전에 자포자기 하거나, 그런 건 당신이 목사니까 가능하지! 란 생각이 들어버린다.
· 기도할 때 pious cliche (진부한 기도용어)를 될 수 있으면 피하고, 가능하면 진솔하고 쉬운 인간의 감정에 와 닿는 용어를 쓴다.
말하자면, 하나님을 멀고 높은 하늘의 크고 웅장하게 지어진 궁전에 앉아서 천하를 호령하는 하나님으로 느껴지게 하지 않고, 바로 내 옆에 앉아서 내 손을 만져주시며 금방이라도 내 눈의 눈물을 닦아주실 것 같은 하나님이 생각나게 만든다.
감정의 동물인 인간의 마음은 그런 딱딱한 기도는 하나님께 올리는 청원 문서를 작성해서 통고하는 것 같이 들리지만, 진솔한 내면에서 나오는 감정으로 올리는 기도는 사랑하는 사람과 손 마주잡고 다정히 나누는 대화 같은 기분이 된다.
·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목사님
최 목사님은 늘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하신다(?).‘쌀쌀 맞게!’
역시 교인들이 목사에게 제일 바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하나님의 부드럽고 자상한 면을 닮은 모습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싹싹하게 대하고….그런 모습 말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늘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만족지수가 정해지기 때문에 아무리 자신에게 잘 해 줘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잘 해주는 모습을 보면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아도 곧 마음이 삐지게 된다. 그리고 또 아무리 잘해줘도, 처음에는 감사하다가, 갈수록 양양이 되어서 더-더-더 하지 않으면 잘 해주는 것에 무덤덤하게 되어, 부러 힘써 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힘이 들게 되어있다.
최 목사님은 이 점을 처음부터 잘 간파하셨던지, 하여간 모두에게 똑같이 못하기로 작정을 하신 것 같다.
그러나 목사님이라도 인간인데, 인간적으로 왜 마음에 더 드는 사람과 덜 드는 사람이 없겠는가. 그래도 누구나 쌀쌀맞게 대하므로 누가 정말로 맘에 드는지 안 드는 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성도들 간에 비교의식이 들지를 않고, 첨엔 냉정한 것을 못 견디다가도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무디어지게 되는 것이고, 또 이런 것이 누구를 심하게 편애를 해서 성도간의 사랑싸움 문제를 일으키는 것 보다 더 낫다고 생각된다.
· 그러나 목사님의 쌀쌀함에는 예외가 있다.
새로 예수를 믿어서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볼 때, 또한 격려가 필요하다는 사람을 볼 때, 그 때는 오히려 ‘오바'해가며 애교가 넘친다.(옆 사람 민망하다) 식사할 때는 자신이 편하고 같이 식사를 하고 싶은 사람의 식탁에 앉지 않고 식당을 한 번 휭 둘러본다. 어디 ‘나를 오늘 필요로 하는 사람'없나 찾기 위함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것도(이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 알려달라고 기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숨겨진 인간적인 면을 볼 때 감동이 오기 때문에 우리 교인들은 본인들이 미리 알아서 목사님의 쌀쌀맞음을 스스로 정당화시키며 이에 맞추어 살려고 노력하는 지도 모르겠다.
· 목사님의 놀라운 기억력과 의외의 세심함
최 목사님은 교인들의 이름과 배경 현재의 삶을 놀랠 만치 꿰뚫고 있다. (만약 아니라면 최소한 그런 것 같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가끔 성을 틀리게도 부르고, 학생인 경우 다니는 학교도 막 바꿔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라도 절대 10마일 한도 내에 있는 근접한 학교로 말하지 그 이상 멀리가지는 않음), 그 것은 교인이 거의 1200명(맞나?)에 다다르는 수를 감안할 때 완죤 애교로 볼 수 있다.
내가 목사님께 우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하면, 노력을 많이 해서 그렇단다. You bet! 그리고, 하나님께 그렇게 잘 외워지게 해 달라고 부탁한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 아무리 IQ 높은 우리 목사님이라도 나이도 계시고, …그럴 수가 없을 걸!
아무튼, 힘든 상황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 쓰기, 처음 오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환영편지를 Word로 pattern하나 짜 놨다가 매번 이름만 바꾸고 사인해서 보내도 될 것을, 그렇게 안하고 일일이 친필(최 목사님 필체는 dog feet bird feet (?)목사님 죄송! (해석)개발새발-의 필체에다 거의 예술에 가깝다-잘 못 알아볼 정도로 …후환이 두려워 그 다음은 생략…^^..HeHe…)로 써서 보내니, 성도들은 이런 목사님의 숨겨진 세심함과 자상함에 감동하게 된다.
또 하나 더 하자면, 복도에서 마주쳐 지나치는 성도에게 쓰-윽, 요번에 따님이 SAT시험 본 것 성적이 잘 나왔다면 서요?’ 하고 묻기라도 하면, 그 성도는 '아니 목사님께서 어떻게 그런 것까지?……'하면서 감격하게 되는 것이다.
·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꺼벙한 목사님의 모습
예로부터, 아무리 좋아 보이는 사람이라도 빈틈이 하나 없어 보이고, 깍쟁이 같이 보이면, 주위사람들로부터 따돌림 받고 미움 당하게 되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그런데 우리 목사님은 ‘허허 실실'이다. 겉은 虛하게 보이지만, 속으로 實하다고 나 할까. 그래서 목사님의 이런 虛가 측은지심을 일으켜 차마 무슨 반대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아유 그냥 넘어가~아, 하는 생각이 든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새벽 기도회 때가 되면 우리 목사님 뒷머리가 꼭 삐쳐있다. 암! 잠이 부족하실게야!
-양복이 몇 벌 없으신 것 같다. 늘 보던 옷들이다. 하지만 깨끗하다!
-밥 같이 먹을 때, 음식물을 다 삼키지 않았는데도 함박웃음을 지어버리신다.
격의 없는 사이 같아 오히려 좋다!
-바지가 구겨져 있다(?). 기도하시고 난 후에 보아서 그렇다…
· 위압적이지 않으면서도 방심하지 않는 목사님(?). 용병술이 뛰어나시다
최 목사님은 사람을 잘 쓰시는 기술이 있는 것 같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이 본인은 정작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모든 악기가 소리를 잘 내게 하는 것이다. 사실, 가정교회를 하면서 제일 일선에서 어려운 사람들은 목자들이다. 목자 목녀들이 간 빼고 속 썩으며 쌩고구마들과 씨름하며 목장을 이끌지, 최 목사님은 일을 시키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목자들은 전문적으로 리더십의 능력이 있거나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고 다 아마추어들이 하나님 안에서의 공유된 가치와 정신적 결속력 하나로 뭉친 오합지졸에 가까운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목자들을 때로는 칭찬으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어떤 때는 서로 은근히 경쟁을 시켜가며, 이 사람들 속에 잠자고 있는 가능성을 하나님 빽 삼아 가능성을 깨워 꽃피우게 하는 것 같다.
목자 일이 고되고 힘들어서 슬슬 불편한 마음이 생겨 반발하고 싶으면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 얘기를 꺼낸다(?). 우리가 이 일을 왜 하는 가? 를 다시 상기시켜 다시 일어서게 한다. 역시 하나님 빽이다. 일은 본인이 시키고, 상은 본인에게 청구하지 말고 천국 가서 하나님에게서 받으라고 한다. 차-암!
세상눈으로 볼 때는 자격미달이라도 목자들 모두에게 A.학점을 주고 시작한다. 웬만한 일에는 목자를 신뢰하여 주며 편 들 정도로 믿어 주고, 목장 안에서 저희들끼리 지지고 볶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서 커가라고 사자가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듯이, 그러나 지켜 서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