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전에 찬양을 하나 골라 회중과 더불어 부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마음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선곡을 잘 한다고 칭찬해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찬양 선곡 원칙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찬양을 선택할 때에 제일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가사입니다. 아무리 곡이 좋아도 가사가 신학적으로 맞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십자가(Above All)"라는 찬양을 한두 번 부르다가 그만 두었는데, 예수님을 "짓밟힌 장미꽃"에 비유하는 것이 주님을 연민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 같아 거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자신이 선택한 장엄한 죽음입니다.
최근에 어떤 분이 추천해 준 찬양은 부르고는 싶은데 가사 한 구절이 마음에 걸려서 주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니”라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웃과 주를 위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을 감동시키기 위한 것인가는 생각이 들기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기뻐는 하시겠지만 감동을 받으실까 는 의문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가사를 중시하다 보니 한국 분들의 곡을 선호하게 됩니다. 외국 찬양 가운데에 좋은 것이 많지만, 가사를 번역하다보면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는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말로 작사된 찬양에는 이런 문제가 없고 가사에 감칠맛이 납니다.
우리가 종종 부르는 “나와 함께 하시는”이라는 찬양은 어느 교회 집회에서 특별 찬양 때 부르는 것을 듣고 감동이 되어 악보를 달라고 해서 가져와서 부르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가장 소중한 주님/영원토록 찬양받으실 주님/ 모든 것이 떠났고 모든 걸 잃었지만/ 언제나 함께 하신 주/ 갈 길 잃어 방황할 때도/ 고통으로 눈물 흘릴 때에도/ 걱정하지 말아라/ 염려하지 말아라/ 내가 네 형편을 알고 있느니라” 평범한 단어로 구성되었지만 마음을 울립니다.
듣자마자 가사에 홀딱 반한 것이, 최근에 우리가 부르기 시작한 ‘소원’이라는 찬양입니다. “삶에 작은 일에도 그 맘을 알기 원하네/ 그 길/ 그 좁은 길로 가기 원해/ 나의 작음을 알고 그 분의 크심을 알며/ 소망/ 그 깊은 길로 가기 원하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 길만 비추기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 준다면/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하듯이/ 살길/ 또 그렇게 죽기 원하네/ 삶의 한 절이라도 그분을 닮기 원하네/ 사랑/ 그 높은 길로 가기 원하네” 이런 간절함이 담긴 찬양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