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저는 모태 신앙으로 태어났지만 대학교 입학과 더불어 교회와 멀어졌다가,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위해 공부하고 있던 30세 되던 해에 비로소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제가 열심히 교회 사역을 하니까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라는 권유를 하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조차 않았습니다. 성도들에게 “이렇게 사십시오” 말해주는 사람보다는 “이렇게 사는 겁니다”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신도이지만 목사처럼 살겠다고 결심을 했고, 학위를 마치고 직장을 잡은 후에는 틈나는 대로 근처에 있는 신학교에 가서 헬라어도 공부하고, 다양한 신학 코스를 수강하였습니다.
산호제 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청년들을 위한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한인 교회들이 소규모라 청소년이나 청년들을 돌볼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과 청소년들을 모아 아파트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6명으로 시작한 이 성경공부는 나중에 50명까지 모이는 큰 모임으로 성장 하였고 많은 젊은이들이 이 모임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교회 사역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나 갈등이 많았습니다. 갈등 중의 하나가 담임 목회자에 대한 섭섭함이었습니다.
목회자는 교회 사역에만 전념하면 되지만 평신도에게는 직장생활이 있고 가정생활이 있습니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임 목사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직장생활이나 가정생활은 사역이 아니고 교회 봉사만이 사역인 것처럼 말할 때에는 섭섭한 생각이 살짝 스치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평신도 사역은 그만하고 평신도 사역자를 키우는 사역을 하라고 하시는 것 같아서, 41세가 되었을 때 신학교 입학을 결심하고 44세에 신학원 졸업과 더불어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목회자가 된 후 저는 목회가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제가 평신도 때 목회자님들이 제발 이러지 말아 주었으면 했던 것은 안 하고, 목회자님들이 제발 이렇게 해주었으면 했던 것을 하니까 교인들이 좋아하고 목회가 저절로 되었습니다.
목회자가 되어 제가 특히 노력했던 것은 성도님들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평신도들이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낭비되지 않고 중요한 것에만 집중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을 때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사역을 하고 사역의 열매가 많은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성도들에 대한 배려는 가정교회를 시작한 이후에도 물론 지속되었습니다. 목자 목녀들의 에너지가 낭비되거나 고갈되지 않도록 교회 오는 빈도수와, 참석해야 할 모임 숫자를 줄여주었습니다.
주일 예배와 목장 모임, 초원 모임 참석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임은 자신에게 필요하면 참석하도록 했습니다. 기도 없이는 목장 사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도를 강조했지만, 반드시 새벽에 교회에 나와서 해야 한다든지, 기도회에 참석해서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기도할지는 본인 결정에 맡겼습니다. 연합 교회 사역도 목자 목녀이면 꼭 해야 된다, 식의 요구를 하지 않았고 각자가 은사에 따라 자원해서 하도록 하였습니다.
휴스턴 서울 교회 가정교회가 20년간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목자 목녀들이 탈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목장 사역 외에 여러 가지 의무가 지워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역이든 자신이 스스로 원해서 하면 피곤하지 않은데 의무로 지워지면 부담으로 닥아오고 마침내는 탈진으로까지 연결됩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것과 상관이 없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맡기고, 영혼 구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줄 때 탈진을 방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목자 목녀가 탈진 상태에 이르렀을 때 이들을 돕기 위하여 훈련을 강화하고 수련회를 갖는 수가 많은 데, 이러한 것들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담임 목회자의 이해심과 배려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주일 밥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VIP 발견하고 섬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평신도로서 목양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목자 목녀 서약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러한 것을 담임 목사가 알고 있고 진심으로 고마워 한다는 메시지가 전달 될 때 목자 목녀들이 탈진에 이르지 아니하고 설혹 탈진에 빠진다 할지라도 딛고 일어 설 힘이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휴스턴 서울 교회 목자 목녀들의 헌신하는 모습을 보며 “나 같으면 못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금요일 목장 방문을 하고 돌아올 때마다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목자 목녀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전달되어서인지 목장 사역이 힘들어도 저를 원망하거나 목자 목녀 직을 포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목자 목녀들의 수고를 고마워하는 마음, 이들에게 필요 없는 짐을 져주지 않으려는 배려심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