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를 하는 목회자들 가운데에는 신실하고 열심도 있는데 교회를 성장시키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무엇을 잘못하고 있을까? 무엇이 부족해서일까? 답답하니까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 보고, 기신자 등록을 거부했기 때문이 아닌가 탓도 해보지만, 많은 경우에 답이 간단합니다.
목회 역량 부족 때문입니다.
목회자마다 목회 역량에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탤런트 비유에 보면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종을 불러서 ‘능력에 따라’ 5탈란트, 2탈란트, 한 탈란트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웃 교인들을 끌어모아 교회를 급성장시키는 목회자들에게 관해 한 가지 인정해 주어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목회 역량이 있습니다.
가정교회를 정착시키려고 애쓰던 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장년 주일 출석이 100명을 약간 넘는 교회를 담임하셨는데, 컨퍼런스에서 만나면 표정이 항상 어두웠습니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부담감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컨퍼런스에서 만났는데 얼굴 표정이 밝아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서울의 대형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은 큰 교회를 목회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아서 항상 답답했고, 교회를 성장시키지 못하는 자신과 교회에 대해 항상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교인 100명을 목회할 그릇밖에 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깨달음이 있는 순간부터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고, 교인들이 고마워졌습니다.”
목회 역량 중의 하나가 ‘목회 센스’ 혹은 ‘목회 감각’입니다. 정의하기 어려운 자질로서, ‘교인들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 혹은 ‘교인들의 필요를 감지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집회에 참석했을 때 순서가 많고 설교가 길어져서 예배 시간이 예정보다 많이 늘어났습니다. 순서지에 설교 후 5절짜리 헌신 찬송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때 사회 보는 분이 5절을 다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센스 있는 목회자였으면 다음날 출근하는 참석자들을 배려하여 한 절이나 두 절만 불렀을 것입니다.
제 후임 이수관 목사님은 목회 센스가 있는 분입니다. 담임을 시작하자마자 3개월 간, 하루씩 돌려가며 금식하는 연쇄 기도 위원들을 모집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목회는 영적 전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담임 목사가 바뀔 때 역사할 수 있는 악한 영의 궤계를 선제 공격한 것입니다.
또 시무 직후 주일 설교 본문을 여호수아서로 잡았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의 행적을 상고하면서 교인들에게 교회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준비를 시킨 것입니다.
제가 은퇴한 후에 교회에 전연 잡음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부흥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후임 목회자의 탁월한 목회 감각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목회 감각은 타고나는 것인가, 개발할 수 있는 것인가?
탁월한 운동 선수 가운데에는 천부적인 재질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부적인 재질이 없어도, 열심히 노력하여 훌륭한 선수가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목회 감각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목회 감각이 탁월하다고 해서 반드시 주님 보시기에 성공한 목회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뛰어난 자신의 목회 감각을, 하늘나라 확장이 아니라 기신자들을 끌어모아 교인 숫자를 불리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자주 봅니다. 또 목회 감각이 있는 목회자들이 자만해져서 기도를 소홀히 하고 주님께 의지하지 않다가 크게 넘어지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목회 감각은 바른 목적을 위하여, 바르게 사용할 때만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 교회 회복을 추구하는 가정교회가 좋습니다.
목회 감각을 소유한 분들이 이를 잘 활용하면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를 만들고, 하늘 나라를 확장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 감각이 다소 뒤떨어진다 할지라도 가정교회 3축과 4 기둥을 붙들고 최선을 다하면, 적어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신실한 목회자는 될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계를 고백하고 겸손하게 주 앞에 엎드릴 때, 약한 데서 완전해 지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서 자신의 역량으로서는 할 수 없는 큰일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