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아내는 한 달에 한 번씩 부부 합동 초원 모임을 돌려가며 참석합니다. 초원이 약 20개니까 목자 목녀 쪽으로는 거의 2년 만에 한번 돌아오는 기회입니다. 이때에는 사역하면서 기쁘거나 보람 있는 일 하나와, 힘들었거나 마음 아팠던 일 하나를 돌아가면서 말하라고 합니다.
기쁘고 보람 있는 일로 목자 목녀들은 작은 일들을 꼽습니다. 새로 임명 받은 어떤 대행 목자는 목장 식구들이 목자라고 불러준 것을 기뻐했습니다. 어떤 목녀는 목장 식구들이 자신의 생일을 기억해 준 것을 고마워했습니다. 자신은 목장 식구 생일을 수없이 챙겨주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러한 간증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마음 아팠던 얘기를 들을 때에는 마음이 저려옵니다. 몸 져 누었는데 어느 목장 식구도 전화 한번 안 해 주더라는 얘기. 부부 단 둘이서 놀러가면서 아기는 당연한 것처럼 갖다 맡기더라는 얘기. 교회 다닌 지 더 오래 되었다고 목자 목녀들 제쳐 놓고 목장 식구들을 좌지우지하더라는 얘기. 오해를 풀기 위하여 수없이 해명을 했지만 믿어주지 않더라는 얘기. 목자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은 것을 알 텐데도 골프를 치러 가면 당연히 목자가 돈을 내주는 것으로 알더라는 얘기.
목자 목녀들이 불평을 하거나 고자질하기 위하여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아팠던 얘기를 하라고 해서 하다보니까 이런 얘기들도 섞여 나오는 것입니다. 목장을 통해 전도가 되는 이유가 100%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을 목자 목녀가 알기 때문에 마음 아픈 일이나 섭섭한 일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 믿지 않거나 새로 믿는 사람이면 모르는데 교회 다닌 지 오래 된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목자 목녀를 대한다는 말을 들으면 담임 목사로서 분노가 끊어 오릅니다.
인간은 성장해야 정상입니다. 인격적으로 자란다는 증거는 섬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으로부터 일방적인 돌봄을 받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혼자 밥을 떠먹고 침대를 개는 등, 자기 앞가림을 합니다. 더 장성하면 집안일로 부모를 돕습니다. 완전히 장성하면 거꾸로 노약해진 부모님을 돌봅니다.
영적으로도 이렇게 자라야 정상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목자 목녀의 일방적인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 생활을 연륜이 길어지면서 목자 목녀와 동역자가 되어 섬겨야합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목자가 되어서 안 믿는 분이나 새로 믿는 분들을 일방적으로 섬겨야합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예수 믿은 지 수년이 되었는데도 목자 목녀가 섬겨주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은 영적 발육이 멈춘 영적 기형아라고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