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국 집회 마지막은 국제 가정교회 사역원 이사들과 같이 여행을 하는 것으로 끝냈습니다. 이사들이 1년에 한번 씩 한국과 북미 교대로 같이 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새로이 제정된 가사원 정관에 의하면 매년 이사의 1/3이 교체되기 때문에 이처럼 서로를 아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이사회가 구성되고 첫 모임인데 한국에서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이번 모임 장소로는 이사님 한 분의 고향인 통영으로 정했습니다. 지중해를 능가하는 아름다운 곳이라는 자랑에 그곳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는데, 그 자랑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통영은 아름다운 항구일 뿐만이 아니라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올린 이순신 장군이 수군 통제부를 설치했던 곳이고,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을 결정적으로 격파해서 전세를 바꾸었던 한산도 대첩이 있었던 곳입니다.
하루 일정을 잡아 한산도를 방문하여 이순신 장군의 유적을 살피고 실제 사이즈로 만든 거북선 모형함도 타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해군 장교로 훈련 받을 때 ‘충무공 정신’이라는 코스가 있었는데, 훈련이 고되어서 강의 시간에는 맨 날 졸았는데 충무공에게는 홀딱 반해서 이 과목에서만은 100점 만점을 맞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지도자를 잘못 만나 그 위대함을 꽃피우지 못한 비극의 인물로 느껴집니다. 당시 왕이었던 선조는 처음에는 이순신 장군을 총애했지만 나중에는 그를 멀리하고 견제했습니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고도 이순신 장군이 고문을 받고 파직을 당한 것도 그 이유에서입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의 자살론이 대두되는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후 누명을 쓰고 파직되었다가, 정유재란이 발발되어 다시 발탁이 되기는 했지만, 전쟁이 끝나면 다시 자신이 역적으로 몰려 가족과 친척들까지 멸족 당할 것을 피하기 위하여 노량 해전을 승리로 이끌고는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켜 전사했다는 이론입니다.
어쨌든 고대 그리스를 포함하여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4명의 제독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인물이 성군을 만나지 못해 위대함을 꽃피우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속상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예수님을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종이 되어야한다고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신 분이니까, 이순신 장군은 진정 위대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주위 사람을 성공시켜주고, 위대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리더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