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내 때문에 놀라면서 삽니다.
제가 대학교 4학년, 아내가 대학교 2학년 때 해수욕장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우연히 만난 것은 아니었고, 당시 민간인은 들어가지 못하는 강원도 북단 화진포에 있는 김일성 별장을 관리하는 분이 아내 친구 친척이라, 이분 덕분에 저와 아내 친구들이 초청받아 휴가를 같이 보냈습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착한 여자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오해가 하나 있었습니다. 착한 여자는 뚱뚱하고 평범하게 생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만나 본 아내는 너무 날씬하고 예뻐서, 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1주일을 같이 보낸 후 서울에 돌아와서 다함께 몇 번 만났으나, 군대 가고, 유학 가고, 멤버들이 하나 둘 빠지면서 더 이상 안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저는 해군 장교로 임관 받아 진해에서 2년 근무하고, 마지막 1년은 서울에 있는 해군 본부에서 근무했습니다. 서울에서 근무하게 된 것을 계기로 다시 연락이 닿아 아내와 만나기 시작했는데, 첫 인상과는 달리 착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결혼했습니다.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하나님이 목회자로 부르시는 것 같아 41세에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내는 사모 노릇은 죽어도 못한다고 하다가, 목사가 된 후 다른 지역에 가서 혼자 목회를 한다는 조건으로 신학교 등록을 허락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목사 안수 받는 날이 인생에서 가장 비참했던 날이었다고 합니다. 경직된 얼굴로 앉아 있으니까 아무도 감히 사진을 찍자고 못해서, 저는 안수식 사진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목사가 되고 나니까 교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조용히 이들을 섬기는 모범 사모로 변신을 했습니다. 아내에 관해 교인들이 부정적인 말 하는 것을, 본인도, 저도,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요즈음, 당신은 사모가 은사인 것 같은데 왜 그렇게 거부했느냐고 물으면, 쑥스러운 듯이 웃습니다. 이러한 변신이 저를 ‘놀라게’ 합니다.
1996년 목회자를 위한 가정교회 세미나를 처음 개최했을 때 아내가 난소암 말기로 암이 이미 몸 전체에 퍼져있는 것이 발견이 되었고, 항암 치료를 받아도 2~3년밖에 더 못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20여년을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서울교회 목자로 섬겼던 김의신 박사가 한국 TV에서 강연을 할 때 암에도 기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거명은 않지만 제 아내를 예로 듭니다. 이렇게 오래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아내 몸의 종양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안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약 5년 전 종양들이 다시 커지기 시작하면서, 임상 실험용 약을 시도했지만 어떤 것은 효과가 없었고, 어떤 것은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중단했습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다는 판정을 지난 해 8월에 받았습니다.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아내가 어떻게 반응할까 염려 했는데, 아내는 이 말을 처음 듣는 순간만 약간 눈물을 글썽이고는 담담하게 받아드렸습니다.
아내는 목회자 세미나 대담 시간에 영적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안한다고 말합니다. 말씀의삶을 휴스턴서울교회에서 제공하기 시작한 이유도, 자신이 성경을 읽고 싶어서라고 말합니다. 종교적인 용어도 달가워하지 않고, 전화를 받을 때에도, “최 사모입니다” 대신에 “최혜순입니다”라고 말하고, 제 사역에도 관심이 없어 보여서 믿음이 작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면서 믿음이 크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치료 방법이 더 이상 없다는 판정이 내려진 후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매달려보자 싶어서 3일 금식을 결심했습니다.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400명 가까운 123 기도 요원 거의 모두가 부분 금식을 하면서 참여했고, 어떤 분들은 저와 똑같이 3일 간 완전 금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식 기도에도 불구하고 암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패혈증이 발발했습니다. 신장 기능이 멈추고, 폐 기능은 10%만 작동하고, 심장에 물이 찼습니다. 응급실 의사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해서 영국을 여행 중이던 아들 가족을 황급히 부르고 임종을 준비했습니다. 휴스턴 서울교회에서는 수요 기도회 중에 이 소식을 듣고 모두 손에 손을 잡고 울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회복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가 신기하게도 3일 금식 기도 기간이 종료된 때와 거의 일치합니다. 하나님께서 종양이 아니라 패혈증을 위해 기도를 시키신 것 같습니다. 패혈증에서 회복이 되더라도 일생동안 투석을 해야하고, 산소통을 차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런 보조 도구 없이 지금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비행기 여행도 이미 두 번이나 했습니다. 암 수치도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보합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능력이 ‘놀라울’ 뿐입니다.
봄에 보스턴 지역을 돌아보는 국제가사원 이사 여행에 참여하고, 한국 목회자 컨퍼런스에 얼굴이라도 비쳐, 기도해 주신 목사님과 사모님들에게 감사의 말 한 마디 전할 수 있는 것이, 123 기도 요원들에게 드린 최근 기도 제목입니다.
오늘은 또 어떤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실까, 기대하면서 하루하루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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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지들이 아내 72회 생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