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 3축 중의 하나인 연합 주일 예배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에 관해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몇 회에 걸쳐서 칼럼을 썼습니다. 제가 신학원 다닐 때 설교학에서C 학점을 받은 주제라, 많이 주저되었습니다. 그러나 VIP들이 내 설교가 귀에 들어온다고 하고, 목자 목녀들이 내 설교를 통해 힘을 얻는다고 하기 때문에, 가르친다기 보다는 “저는 설교를 이렇게 합니다.”, 차원에서 글을 썼습니다. 이제 설교에 관한 시리즈를 끝내면서 설교에 관해 나름대로 터득한 팁을 말씀드립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입니다. 얻어지는 유익이 있다고 생각될 때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교회에 관해 설교할 때에는 “신약교회를 회복하면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과 같은 기쁨과 파워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식으로 신약교회를 회복했을 때 얻어지는 유익을 강조해야 합니다. 가정교회는 신약교회 회복을 목표로 하지만, 평신도들은 신약교회 회복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설교할 때 죄책감과 의무감에 호소해 보았자 부담감만 심어주지 삶이 변화하지 않습니다. “전도는 교인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는 의무감에 호소하는 것이고 “전도도 안 하면서 교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는 죄책감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보다, 비신자에게 전도하여 영혼을 구원했을 때 신앙생활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든가 교회 생활이 재미있어 진다는 식으로, 돌아오는 유익을 말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설교를 삶에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무엇을, 해야할지를 구체적으로 가이드 해 주어야 합니다.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를 마친 후에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내가 설교를 통해 교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것이냐?” “청중들이 이 설교를 듣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분명한 답이 나오지 않거든 설교를 다시 짜시기 바랍니다. 설교 내용을 설교자가 먼저 삶에 적용해 본 후에 설교하는 습관을 들이면 더욱 더 좋습니다.
설교를 삶에 적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설교의 핵심이 되는 단어나 구절을 되풀이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면 제가 즐겨하는 설교 중의 하나가 ‘인생은 출장이다’인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출장같은 삶은 살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출장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둘째...’ 식으로 같은 어귀를 되풀이 합니다. 또 ‘헌신’이나 ‘사랑’이 주제라면 ‘헌신’이나 ‘사랑’이라는 단어를 설교 중에 여러 번 반복하여 머리 속에 각인되도록 합니다.
설교 중에 청중들에게 ‘숨쉴 여유’(pause)를 주기 바랍니다. 청각 신경을 통해 입수된 정보가 뇌에서 처리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 시간이 길어집니다.) 설교 듣는 사람들에게 숨 쉴 여유를 주지 않으면, 앞서 들은 정보가 뇌에서 처리되기 전에 다음 내용이 도달하기 때문에 들은 것은 많지만 머리에 남는 것은 없게 됩니다. 탁월한 연설가로 인정받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 비디오를 보면 문장이나 문단 사이에 얼마나 적절하게 숨쉴 여유를 주어서 설득력을 높이는지 볼 수 있습니다.
설교할 때 VIP들이 갖고 있을지 모르는 의문에 민감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본문을 갖고 설교할 때 베드로가 물위를 걸었다는 사실은 슬쩍 넘어가고 교훈에만 집중하면 VIP들은 “사람이 물위를 걸을 수 있어?”라는 의문 때문에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걸었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성경은 목격자들의 증언을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한 마디만 해도 VIP들의 마음이 열립니다.
비열하거나 과격한 용어는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얌체’ ‘제까짓 것이 뭘 안다고’ ‘개야 짖어라. 기차는 달린다.’ 등과 같은 표현은 말의 내용과 상관없이 청중의 마음을 닫게 만듭니다. 타 종교를 비아냥대는 듯한 표현도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기신자들은 재미있어 할 지 모르지만 VIP들에게는 거부감을 심어줍니다. 저는 종교 창시자들을 언급할 때 “ 석가모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식으로 높임말을 사용합니다.
설교를 많이 들으면 교인들이 변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많이 하는 것은 권투 경기에서 가벼운 잽을 많이 날리는 것과 같습니다. 설교자를 지치게 만들고, 설교에 대한 면역성을 높여서 성도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데 오히려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설교 한두 편을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고, 혼신을 다해 설교할 때 권투 경기에서 KO 펀치를 날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저는 휴스턴 서울교회에 부임했던 초기에는 설교를 많이 했지만, 설교 횟수를 점점 줄여서 은퇴할 즈음에는 세겹줄 기도회와 같은 특별한 집회 외에는 설교를 다른 교역자들과 안수 집사들에게 맡기고, 수요 기도회 설교는 성도들의 다양한 간증으로 대치하고, 저는 주일 연합 예배 설교 딱 한 편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