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다카이브’는 ‘한곳에 더불어 많이 있게 하다’라는 의미의 순수 우리말 ‘모다’와 ‘기록 보관소’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아카이브(archive)’를 조합한 것입니다.

여기에 올리면 좋을 최 목사님과 관련된 자료를 보내주시면 검토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연락처 : 남인철 목사 / kpcovisio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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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목사 조부님 이야기

조부님 이야기
제 조부, 최석모(崔錫模) 목사님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와 한성 영어 학원에서 같이
수학하셨습니다. 영어에 능통해서, 1923년에 동양선교회가 이사회 협의체로 운영될 때,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동양선교회(OMS) 이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33년에는 동양선교회 이사 자격으로 미국에
가서 한국교회의 상황을 보고하고, 성결 교단을 위해 모금 활동을 벌이셨습니다.
조부님은 23년 동안 서울 아현성결교회에서 시무하셨습니다. 총회와 교회 목회에 전력을 다하셔서
출근하면 바쁘게 일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해 굶을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모님은 “죄수들도
식사시간이 있는데, 당신은 죄수보다 못하다”고 푸념할 때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6.25가 발발했을 때 우리 가족은 피난을 못 갔습니다. 서울을 점령한 후 승승장구하면 낙동강까지
내려갔던 북한군은,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 작정에 성공함으로, 북으로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많은 남한 지도자들을 끌고 갔는데, 조부님도 이런 지도자 중의 한 명으로
납북되셨습니다. 성결교단에서는 조부님을 한국전쟁 순교자로 추대하여,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에 봉안 되어 계십니다.
조부님은 제 목회의 멘토이십니다.
조부님은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셨던 분 같습니다. 교회에서 신분 차별을 하지 말라고 성경이 가르친다고
(약 2:1~4). 주일 예배 때에 교회당 상석이라 할 수 있는 맨 앞자리에 아현 시장 맹인 거지들을 앉히셨다고
합니다.
저도 목회 하면서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은, 조부님의 정신을 물려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휴스턴 서울교회 주일 예배에 한국 저명 인사들이 참석하는 수가 종종 있었지만, 직함을 불러
소개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조부님은 오직 목회 외에는 다른 것에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8.15 해방 직후 남한이 미 군정 밑에 있을 때,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필요하니까 이승만 박사는 조부님에게 같이 일하자고 간곡히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때 수락을 했으면 총리까지도 바라볼 수 있었다고 당시 장로님들의 말합니다. 그러나 영혼구원의 사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셨습니다.
제가 교회 밖의 사역이나 직책에 관심이 없고, 오직 목회에만 관심을 쏟았던 것도, 조부님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부님은 희생적으로 목회를 하셨습니다.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고, 북한군이 북으로 퇴각할 때
조부님에게는 피신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을 버릴 수 없다고 교회를 지키시다가,
공산군들에게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 가셨고 생사조차 모르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상적인 지도자 상은, 어뢰에 맞아 침몰하는 배에서, 부하들을 대피시키고 장렬하게 배와 더불어
침몰하는 함장입니다. 이런 지도자 상을 갖게 된 것은 조부님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부님.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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