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들이 교회를 떠날 때에 담임 목사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일까? 내게 무엇이 부족할까? 자문하면서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이로 인해 생길지 모르는 후유증으로 인하여 두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도 휴스턴 서울 교회에 부임한 지 약 2년만에 큰 사역을 하던 10여명이 한꺼번에 교회를 떠나는 아픔을 맛보았습니다. 저를 휴스턴 서울 교회 담임 목사로 청빙할 때 약 90명이 찬성하고 10명이 반대하였다고 하는데, 이때 반대표를 던진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들은 저를 인본주의자라고 하며 처음부터 달갑지 않게 여겼습니다. 평소에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 환자를 방문해도 예배를 드려주지 않는 것 등이 목사답지 않게 보였고, 거룩하지 않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이 사람들은 제 설교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습니다. 삶의 적용을 강조하는 제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말을 전하는 것이라고 폄하하였습니다.
저는 이들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하기로 결심 하였습니다. 적대시 하는 사람들에게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은 정도(正道)를 따르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별 대우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특별 대우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정교회로 전환할 때에도 가정교회 원칙에 따라 목장 선택권을 주면, 부정적인 사람들이 똘똘 뭉칠 것이 예상되었지만, 원칙에 따라 그렇게 하도록 두었습니다.
교인 절대 다수가 저를 좋아했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공격하지는 못했지만 이 사람들은 뒤에서 불평불만을 쏟아놓았고, 저에게 끊임없는 ‘몸의 가시’ 노릇을 하였습니다.
약 2년 간 저를 힘들게 하던 이 사람들이 갑자기 떼를 지어 옆에 있는 큰 교회로 옮겨 갔습니다.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은 이들이 너무나도 반가워서 예배 시간에 일으켜 세워 박수를 쳐주었다고 합니다.
당시 휴스턴 서울 교회는 사이즈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떠난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고, 다른 교인들도 이들을 좇아서 교회를 떠나면 어쩌나는 두려움도 생겼지만, 이것이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교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던 부정적인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전도가 되기 시작하고, 가정교회가 꽃피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내 놓고 보니 이 사람들은 저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당시 서울 교회 교인들이 저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오만방자 해져서 삶과 목회가 흐트러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판적인 눈으로 보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트집잡히지 않기 위해 시간 관리, 돈 관리를 철저하게 했고,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목회자 코너나 교회 홈피를 통해 교인들과 끝임 없이 소통하였습니다.
떠나겠다는 교인들은 보내줄 수밖에 없고, 어떤 때에는 이들이 떠나는 것이 교회에 유익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떠나려면 떠나라”는 자세로 목사가 임해서는 안 됩니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궁극적인 책임은 담임 목사에게 있습니다. 미안해 해야 합니다. 이들의 비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이 떠난 후에라도 자신에게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고쳐가고,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채워가야 합니다.
가정교회로 전환하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긴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가정교회 전환 이전과 이후, 교회를 떠난 사람들 숫자를 비교해 보았는데 별 차이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전에는 목사 탓을 했지만 이제는 가정교회를 탓하면서 떠나기 때문에 가정교회가 문제인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정교회로 전환한 후에 떠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편한 교회 생활을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목양은 목회자에게 맡기고 자신은 교회에서 주는 다양한 혜택을 누리면서 편안한 교회 생활을 했는데, 가정교회로 전환하면서 희생과 섬김을 요구받으니까 이것이 싫어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 목녀로 섬기는 장로님들, 권사님들, 안수 집사님들을 보면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지고, 귀하게 생각됩니다. 회의나 주관하고, 교회 행사나 관장하는 편한 교회 생활을 포기하고 종의 모습으로 섬기는 것을 보면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원하셨던 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이렇게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정교회는 군대로 치면 특공대에 해당합니다. 특공대는 특별한 사명을 받은, 특수 집단입니다. 훈련도 고되고 복무 생활도 힘듭니다. 그러나 이들은 특수요원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고되고 힘든 것을 자랑으로 삼습니다.
신약교회 회복은 교회의 사활이 걸린 시대적 사명입니다.
싫다는 사람들과 승강이를 벌이며 에너지를 낭비할 여가가 없습니다. 사명의 고귀함을 못 보는 사람들이 떠나겠다면 보내주고, 공동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주님이 원하셨던 교회를 세워 가고, 어둡고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잃은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넓혀가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