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경주에서 개최된 목회자를 위한 컨퍼런스에서 한 교수님이 특강을 맡으셨습니다. 강의 전에 나를 만나보고 싶어 한다고 해서 약속된 식당으로 갔습니다. 거기에 눈이 사슴처럼 맑은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백석 신학 대학에서 20년을 시무하고 계신 홍인규 교수님이셨습니다.

홍 교수님은 신약학이 전공입니다. 특별히 바울 신학 전문가이십니다. 이분은 신학자일 뿐만이 아니라 목회자입니다. 교회를 개척하여 신약 교회와 같은 교회를 이루어보려고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서, 성경적인 교회를 재현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모양이라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순천 강남 중앙 교회에(최경학 목사) 강의 초청을 받아 갔을 때, 자신이 꿈꾸었던 신약 교회 모습을 가정교회에서 발견하고 흥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가정교회 전도사 노릇을 하고 계십니다.

신약교회에 관한 홍 교수님의 지론은 신약교회가 교회론에 기초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고, 신약교회 경험에 기초하여 교회론이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선(先) 체험, 후(後) 이론이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도 교회론에 의하여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 교회 체험에 기초하여 교회론을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선(先) 체험, 후(後) 이론이라는 홍 교수님의 지론에 동의하며, 저 나름대로 풀어 쓰자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120성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이 강림함으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신분에 상관없이, 남녀의 구별 없이,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면서 사도 베드로는 요엘이 예언했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행 2:14-21). 요엘의 예언의 의하여 성령 강림을 예상한 것이 아니라, 성령 체험을 통하여 요엘이 선포한 예언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선 체험, 후 이론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다고 선포했습니다(갈 3:28). 그러나 이러한 사도 바울의 확신은 신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체험하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선 체험, 후 이론입니다. 

교회는 가족 공동체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관도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보면서 깨달아진, 선 체험, 후 이론입니다.

주님께서 꿈꾸셨던 교회는 가정교회였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2:49-50). 예수님은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배척하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형성될 교회 공동체는 가족 공동체라는 것을 예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뜻을 받들어 사도 바울은 나이든 사람은 어머니와 아버지, 젊은이들은 동생으로 대하라고 디모데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딤전 5:1-2)

주님이 원하셨던 교회 공동체가 가족 공동체라면 어디에서 모여야 했을까요? 가정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떡을 떼고 예배를 드렸습니다(행 2:46-47). 신약 교회는 가정교회였습니다. 

신약 교회가 가정교회였던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도 바울의 신학과 교회관을 이해할 수 없다는 홍 교수님의 지론은 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머리 되시는 진정한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는 목회자라면 가정교회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에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홍 교수님의 교회론이 가정교회 교회론과 너무나도 일치하니까, 홍 교수님과 제가 사전에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오해했던 목회자들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신약 교회가 가정교회라는 홍 교수님의 확신은 오래 전에 형성된 것으로서, 약 10년 전에 이미 ‘신약교회는 가정교회다’라는 책까지 저술하여 출판하셨습니다.

홍 교수님의 특강을 들으면서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신약교회가 가정교회라는 것이 명백한데, 보수 장로 교단에서 가정교회에 관해 토론이 벌어졌을 때 왜 어떤 학자들은 가정교회가 성경적이 아니라고 주장했을까?”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이분들은 안경을 쓰고 성경을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분들은 신약 성경을 인용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성경보다는 16세기에 형성된 개혁주의 교회관에 의하여 가정교회를 비판했습니다. 개혁 신학이라는 안경을 쓰고 성경을 읽기 때문에 신약 교회가 가정교회였다는 것을 못 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느 누구도 100% 객관적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조명이 있다 할지라도, 타고난 성품, 자라온 배경, 받은 교육, 경험한 교회생활이 성경 해석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다 안경을 쓰고 성경을 읽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독선적으로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홍인규 교수님은 안경 없이 성경을 읽는 드문 분들 중의 한 분인 것 같습니다.

논문;바울과_가정교회-홍인규교수.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