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부모들에게 자녀가 우상입니다. 자녀들 과외활동 돕는다고 사역도 안하고, 주일 예배도 거릅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노력을 쏟는 만치 비례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은 하나님이 키워주셔야 합니다.
제가 41세에 신학교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아들 선일이가 9살, 딸 선주가 8살이었습니다. 신학교를 가기로 한 제 결심을 아내가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아내도, 저도,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지 못하면서 자랐습니다. 아들딸만은 가진 잠재력을 원 없이 개발할 수 있도록 밀어주고 싶었는데, 제가 신학교에 가기로 결정함으로 인하여 이런 꿈이 산산이 깨어졌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제가 아내의 손을 잡고 이렇게 설득하였습니다. “여보, 내가 자신의 보람을 위하여 목회자가 되는 것이라면, 자녀들을 희생시키는 것이요. 그러나 하나님의 부름이 있어서 목회자가 되는 것이라면 자녀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최선의 것을 해 주는 것이요.”
제가 다니는 신학교는 집에서 90마일 떨어져 있어서, 주중에는 기숙사에 묵으며 수업을 들어야했습니다.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낼 수가 없었고, 학교 행사에도 항상 아내 혼자 참석해서 다른 학부형들은 아내가 이혼모인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선일이 선주가 믿음을 저버리면 어쩌나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자 자녀들 가운데 목회자 생활에 염증을 느껴서인지 교회를 떠나든지 신앙과 멀어지는 것을 종종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매일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 받아 목회를 하면서도 바쁜 스케줄 때문에 자녀들과 계속 충분한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환갑을 맞게 되었습니다. 며느리가 제 생일을 기념하여 'Chai Chronicles'(최 씨 연대기)라는 4 페이지짜리 팜프렛을 만들었습니다. 친척들에게 축사를 부탁해서 실리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저와 관련된 추억을 쓰도록 하여 수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들 선일이가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는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내가 본 사람 중에서 아버지는 가장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아버지 삶의 반만 산다 해도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글을 읽으면서 제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자녀들에게서 원망의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존경의 말을 듣다니! 하늘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서 살 때에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겠다는 마태 6:33의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