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떤 사람에게 부탁을 받았을 때에는 즉시 수락하지 않고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쉽게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고 생각했다가 이런 대답을 들으면 “이만한 부탁도 선뜻 못 들어주나?” 서운해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쉽게 약속했다가 지키지 못하면 어쩌냐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순교하신 제 조부님이 종종 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목사는 말을 먹고 사는 직업(?)이기 때문에 교인들이 목사 말을 못 믿게 되면 목회는 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목회의 성공 여부는 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설교도 말이고, 성경공부도 말입니다. 교인들이 담임 목사를 신뢰할지 안 할지를 결정할 때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봅니다.
말이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말에 관해 몇 마디 조언을 드리려고 합니다.
목사는 인사말에 신중해야 합니다. 목사들끼리 만났다 헤어질 때 “나중에 식사 한 번 합시다” 가볍게 말할 수 있지만, 교인들에게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교인들에게 목사는 권위자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들으면 언제 식사하자고 할까, 그날부터 연락을 기다립니다. 그러므로 만나서 식사할 생각이 없으면 이런 인사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중에 전화하겠습니다.”라고 말했으면 반드시 전화하고,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했으면 반드시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섬기는 리더가 되려면 명령하는 듯한 표현을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기보다 “이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요청 사항이 있을 때 상대방에게 선택을 주는 표현을 사용하면 더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될까요?” “이렇게 해주실 수 없을까요?” 이런 표현을 사용할 때 상대방이 기분 좋게 요청에 응하게 됩니다.
목회에 유용한 도구 중의 하나가 유머입니다. 유머는 자신에게 긴장감을 풀어주고 주위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그러나 목사의 말에는 무게가 있기 때문에 뜻하지 않은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뷔페 식당에서 몸무게가 나가는 사람이 접시에 음식을 여러 번 담아 갖고 왔을 때 “도대체 지금 몇 번째야? 뷔페 집 거덜나겠네.”라고 말하면, 농담인 줄 알면서도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목사의 유머는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당신이 음식을 맛있게 먹으니까, 나도 식욕이 마구 생기네.” 긍정적으로 말하면 쌍방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메일에 답신을 하거나, 웹 페이지에 댓글을 달 때에 상대방의 진심이나 진정성을 의심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표현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 “안 믿어집니다.” 등이 예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 같으면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면 어떨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목사는 어떤 상황에서든 과격한 표현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 중에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관해 “개야 짖어라, 기차는 달린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신념을 갖고 목회하겠다는 의미로 말했겠지만 청중에게는 ‘개’라는 단어만 머리에 남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 강퍅해질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혹시 자신을 ‘개’로 생각하나 싶어서 비판 세력에 동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단어는 무조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제 3자에 관해 말할 때 ‘제까짓 것’ ‘유치하다’ 등의 표현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말을 너무 완곡하게 하는 것은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오해의 소지를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처럼(마 5:37) 단순하고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고마우면 딱 부러지게 “감사합니다.” 미안하면 돌려 말하지 말고 “미안해요.” 잘못했으면 변명하지 말고 “용서하세요.” 정확하게 말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유치한 표현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유행가가 인기인 이유는 유치한 가사가 감성을 터치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말의 내용보다 표현 자체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멋저져(혹은 더 예뻐져) .” 사모라면, “난 다른 목사 설교보다 당신 설교가 제일 은혜가 돼.” 목사라면, “당신 아니었다면 난 목회를 접어야했을 거야.” ‘말’이 ‘사랑의 언어’인 배우자에게는 이런 유치한 표현이 심금을 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