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를 시작하는 목회자들 가운데에는, 제가 휴스턴 서울 교회에 부임해서 했던 첫 설교들을 가져다가 사용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주제에 상관없이 제 모든 설교에는 가정교회 정신이 배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할 때 교인들에게 가정교회 정신이 전수되고, 설교자 자신도 가정교회 정신에 젖어들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 설교를 가져다 사용하는 것이 표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갖다 사용하더라도 어차피 똑같이는 할 수 없고,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 자신의 설교가 되어버리고, 제 설교는 주석 정도의 역할만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담임목사 설교가 제 설교에 기초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이렇게 한다는 사실을 교인들에게 딱 한 번만 미리 말해주면 됩니다.
모방은 창조의 아버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설교를 시작할 때 설교 대가의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흉내내었습니다. 한어 설교는 이동원 목사님 설교를, 영어 설교는 Chuck Swindle 목사님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분은 워낙 탁월한 설교자라 제가 그대로 옮긴다는 것이, 얼굴이 까맣게 타고 손에 굳은살이 박힌 노동자가 세련된 도시 사람의 양복을 빌려 입는 것 같아서, 설교의 원칙을 체득하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목회자들이 제 설교를 갖다 사용한다는 것이 사실 저에게는 영광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신학원에 다닐 때 설교학에서 C 학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기 내내 점수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간 고사에서도, 실기에서도, 계속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학점에서 가장 비중이 큰 기말고사 때 생겼습니다. 성경 구절을 주고 즉석에서 설교문을 작성하라는 것이었는데, 제게 갈등이 생겼습니다. 설교학 교수가 가르치는 설교와 제가 생각하는 설교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설교학 교수의 설교는 성경 구절에 기초를 두기는 하지만 설교자 자신의 신념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저는 성경 본문을 기록한 저자의 의도를 발견하여 오늘날 청중들이 처한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설교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본문과 거리가 먼 설교를 하는 것은 설교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기말고사 용지를 앞에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어진 본문은 구약 열왕기하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이 벌이는 전쟁에 관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교훈이 담겨 있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설교학 교수가 원하는 식으로 설교문을 만든다면 ‘전쟁’, ‘갈등’, ‘리더십’ 등을 주제로 설교문을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본문을 기록한 저자의 의도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설교학 교수가 원하는 설교문을 쓸 것인가, 아니면 내가 믿는 설교문을 쓸 것인가? 고민하다가 제 설교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읽어도 유치해 보이는 설교문을 쓰게 되었고, 결과는 C 학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정교회를 하고 보니 C학점을 감수하고서라도 제 설교 원칙을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가정교회의 핵심 가치가 ‘성경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를 고수하려면 성경 말씀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해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아니라고 하면, 아닌 줄 알고, 하라고 하면,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에 있어서도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을 전해야지 성경 본문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상이나 철학을 전달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강해 설교가 가정교회 설교로서 가장 적합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강해 설교를 주석 설교로 착각해서 설교 내내 성경 구절의 의미를 파헤치는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설교는 지적인 욕구는 채워주지만 사람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강해 설교자는 본문을 학문적으로 풀어주기보다 저자의 의도를 발견해서 회중들이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성경 기자는 당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처해 있던 절박한 상황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하여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강해 설교를 하는 사람들은 저자가 성경을 기록할 때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여 오늘날의 유사한 상황을 찾아 적용하는 것을 설교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가정교회 설교자가 강해 설교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제 설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성경에 기초해야 하고, 성경 구절을 인용할 때에도 저자가 의도했던 의미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성경구절들을 짜깁기해서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을 정당화시키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단 집단인 신천지 성경공부에 매료되어서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의 성경공부가 이런 짜깁기 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