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모” <3.25.2007>

최영기모다카이브 2023.09.01 06:42:13

제게 고모가 한 분 계십니다. 제게는 어머니 같은 분이십니다.

한국 전쟁 시 피난을 갈 때에 우리 식구는 여섯이었습니다. 지금의 아내보다 당시 더 어렸던 조모님, 중학생이었던 막내 삼촌, 일곱 살이었던 저, 네 살배기 남동생, 그리고 고3이었던 쌍둥이 고모였습니다.

저희 조부님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와 영어 학교를 같이 다닐 정도로 개화된 분이셨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일찍 미국에 오기 시작했습니다. 큰 고모와 큰 삼촌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미국에 유학을 왔고, 작은 삼촌은 피난 중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로 유학을 왔습니다. 얼마 후 큰 쌍둥이 고모가 유학을 왔습니다. 먼저 미국에 와서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어머니를 모시고 다음에 작은 쌍둥이 고모가 유학을 간다는 묵계였습니다.

작은 고모는 어머니와 우리 두 형제를 돌보면서 계속 유학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큰 쌍둥이 고모가 학위를 마친 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고집하자면 어머니와 어린 조카 둘을 두고 떠나야 되는데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유학의 꿈을 접고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원양어선 기관사로 일하던 청년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수 년 후 저희 형제도 유학 차 미국에 오게 되었고, 조모님도 도미하셔서 우리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족 중 제일 마지막으로 작은 고모도 가족과 더불어 이민을 왔습니다. 나이 들어 온 이민이라 고생스럽게 델리 가게도 하고 세탁소도 하면서 세 남매 교육을 시켰고 결혼도 시켰습니다. 그러는 새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고모는 75세가 되었습니다.

이 고모님이 지난주에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언어와 동작을 지배하는 뇌세포가 다 죽었다고 합니다. 고모는 죽음을 예상하셨는지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지 말 것과, 화장해서 남편 무덤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장을 이미 작성해 놓으셨습니다.

이 고모님이 형제 중에서 믿음이 제일 좋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가기로 했을 때에 조부님의 뒤를 잇는 자손이 생겼다고 유일하게 기뻐하셨습니다. 제 설교 CD를 받으시면 혼자 듣지 않으시고 주위 사람들에게 돌리시는 제 설교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십니다. 전화를 하시게 되면 당신은 잠자리에 들 때마다 천국에서 깨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잠든다고 하셨습니다. 뇌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지만 말은 알아들으시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요일에 필라델피아에 가서 작별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고모에게는 천국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드리고, 하나님께는 고모가 그리던 천국으로 속히 데려가시라고 기도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