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에 방언을 받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참 좋습니다. 몇 명이 모여서 기도하다가, 어떤 분은 혼자 기도하다가 방언을 받습니다. 이번 세겹줄 기도회를 통하여 방언을 받았다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영성을 추구하는 우리 교회로서는 이처럼 자연스럽게 방언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기쁨을 느낍니다.
성경에 보면 방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전연 배우지 않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입니다(행 2:1-6). 다른 하나는 억양이나 발음이 외국어처럼 들리지만, 언어 구조를 갖지 않은 방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돕기 위하여 주시는 기도 방언입니다(고전 14:14-15).
방언은 성령의 은사 가운데에 가장 작은 은사입니다(고전 12:28). 은사는 공동체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주어진 것인데(고전 12:7), 방언만은 통역하지 않으면 이웃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개인의 기도 생활에만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방언보다는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고(고전 14:5),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고전 12:31-13:1).
방언은 다 성령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 종파인 모르몬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19세기 북미 인디언들 틈에 방언 현상이 요원의 불길처럼 퍼졌던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신 방언이 성령님이 주신 것인지 아닌지는 결국은 열매를 보아서 압니다. 방언과 더불어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더 섬기게 되면 성령 방언을 받은 것이고, 방언을 받은 후에 주위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면 성령님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방언은 가장 작은 은사이지만 무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도 더 큰 은사를 사모라하고 하면서 동시에 방언을 무시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고전 14:39).
제 경험에 의하면 믿음이 성숙한 사람이 방언을 받는 경우가 드뭅니다. 섬김이나 사랑을 비롯하여 더 큰 은사를 이미 행사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줄 필요를 안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방언을 하고 싶은 갈망이 생기면 일정 기간을 정하고 간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일정 기간 간구해도 안 주시면 하나님 결정에 순복하여 이미 받은 은사를 감사하며 주님과 이웃을 섬겨야지, 방언 받은 분들을 끊임없이 부러워한다든가, 방언을 못한다고 자신을 비하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