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법” <12.4.2005>

최영기모다카이브 2023.08.30 08:47:20

맹장 수술 직후 병실에 입원해 있으면서 속에서 짜증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이 먹고 싶은데 안 된다고 거절당하든지, 무엇을 사다 달라고 했을 때에 더 좋은 것이라고 하면서 다른 것을 사다주면 화가 치밀었습니다.

병약해서 눕게 되면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가고 싶은 데도 못 갑니다. 작은 동작도 간호사나 가족의 도움을 얻어야합니다. 삶에서 선택의 여지가 확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하고 싶은 것을 거절당하는 것은 몇 개 안되는 선택권 행사를 거부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어머니, 기운도 없으시면서 왜 이러세요! 내가 다 할 테니 가만히 들어가 앉아 계세요.” 노모가 부엌일을 돕겠다고 부엌에 들어섰을 때에 며느리나 딸들이 흔히 하는 말입니다. “자네 돈도 없으면서 무슨 밥을 사겠다는 건가? 밥값은 내가 낼 테니까 염려 말게.” 돈 없는 친구가 어쩌다가 친구들이랑 같이 밥 먹고 음식 값을 지불하려할 때에 말리면서 하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상대방을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이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인생에서 선택의 여지가 적은 사람입니다. 소유할 수 있는 것, 갈 수 있는 곳, 할 수 있는 일 등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건강일수도 있고, 돈일수도 있고, 학력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제한된 선택을 가진 사람들이 베풀고자 할 때에 이것을 거절하는 것은 이들의 자존심과 자긍심에 타격을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쇠해지면서 선택의 여지가 점점 줄어듭니다. 돈이 없으니 금전적으로 도울 수가 없고, 학력이 떨어지니 지혜로 도울 수도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일생 해 온 부엌일입니다. 이것으로 기여해보려고 하는데 이런 기회까지 거부당하면 연로한 어머니로서의 무력감이 더해집니다. 친구들에게 대접만 받던 사람이 어쩌다 밥값 한 번 내려고 할 때 이를 거절당하면 자긍심이 손상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 섬김을 강요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진정으로 원할 때에 그 섬김을 받는 것은 사랑입니다.

약한 사람의 선택을 존중해 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