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26일 작성된 게시물이 관리자에 의하여 목회자코너 게시판에서 이곳으로 복사되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뇌리에 아직도 생생하게 새겨져있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4.19 학생 의거에 의하여 이승만 대통령 정권이 무너 지고 이 대통령이 미국으로 망명을 떠난 때였습니다. 이 대통령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을 때에 그의 소원에 따라 귀국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귀국할 때에 많은 군중들이 연변에 서서 박수를 치며 환영하였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독재자라고 매도했던 분을 열렬한 박수로 맞는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당혹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무척 감정적입니다. 정치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적과 동지는 이념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위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서 동지라 할지라도 건방지게 느껴지면 적으로 간주하고 배척합니다.
거꾸로, 적이었던 사람도 자기 집 경조사에 충분한 성의를 표했다고 느껴지면 동지로 간주하고 받아들입니다. 국민들도 그렇습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구조 조정을 하여야한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러나 실제로 구조 조정에 들어가면 실직자가 생긴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누가 위정자가 되든지 간에 이처럼 감정적인 국민을 통치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사람이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진리 개념의 결핍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은 서양 사람처럼 진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양 사람은 작은 거짓말도 큰 죄로 생각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선의의 거짓말 정도는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개념이 약하기 때문에 원칙에 의한 삶이 힘들고 죄에 대해서도 둔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한국 사람이기에 논리보다는 감정에 의존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일로 이웃과의 관계가 불편해져서 되어질 일이 안되어지는 수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초에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웃의 말이나 행동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여 나의 결정이나 삶에 영향을 받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런 결심이 있은 후에 남과 더불어 일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 것을 발견합니다. 어떤 사람이 불손한 태도를 보이거나 불공한 말을 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일로 기분 나빠하지 않으니까 사는 것 자체가 훨씬 편해진 것을 느낍니다.
'건방지다', '기분 나쁘다'라는 감정에서만 자유스러울 수 있다면 우리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