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로 전환하면 교회 성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오해 때문에 가정교회 전환을 두려워하는 목회자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가정교회가 수평 이동을 막기 때문에 교회가 급성장 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건강한 교회는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가정교회는 영혼 구원에 집중하기 때문에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국제 가정교회 사역원 주소록에 교회 이름을 올린 교회들은 매년 주일 출석의 5-20%에 해당하는 불신자에게 세례나 침례를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적으로 성장하는 교회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왜 그런가? 새로운 교인들이 더해지는 만큼 오래된 교인들이 떠나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떠나지 않았으면 착실하게 교회가 성장했을 텐데 말입니다.
가정교회가 싫어서 떠나는 경우는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휴스턴 서울 교회에 부임한 후 2년쯤 되었을 때 가정교회를 싫어하는 10가정 정도가 떠났는데, 이들이 떠남으로 인하여 교회를 짓누르던 어두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가정교회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가정교회가 싫어서가 아니라 담임 목사의 미숙함 때문에 교회를 떠납니다. 그 미숙함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가정교회 전환을 서두르는 것입니다. 교인 숫자가 많으며 많을수록, 교회 역사가 오래면 오랠수록, 교인 평균 연령이 높으면 높을수록, 준비 기간을 길게 잡아야합니다. 그런데 급히 서둘러 불도저식으로 밀고 나가기 때문에 교인들이 떠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설득하고, 기다려주고, 품고 갔으면 됐을 텐데 조급하게 서두르다가 좋은 일군들을 놓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가정교회로 전환할 때에 목표는 분명해야하지만, 속도는 조절해야합니다. 당장은 가정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가정교회의 진정한 맛을 보면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을 품고 함께 가야합니다.
둘째는 가정교회를 원칙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목회자들뿐만이 아니라 평신도들도 신약 교회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이런 평신도들이 세미나에 참석하여 신약 교회의 비전을 보게 되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런데 담임 목사가 신약 교회 회복을 외치면서도 진정성이 결여되었을 때 실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데 올인 하지 않는다든가, 목자들을 구역장처럼 취급하고 목양권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든가, 잡다한 교회 행사와 프로그램을 존속시켜 목장 사역에 시간과 에너지가 집중되지 못하게 하는 것 등입니다. 이럴 때 담임 목사에 대해 실망하게 되고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셋째는 성도들의 기를 살려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정교회를 전환할 때에는 많은 에너지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3-5년 되어서 가정교회가 정착되면 가정교회 사역 자체는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기름을 많이 먹지만 일단 하늘에 떠서 순항하게 되면 기름을 별로 먹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은 사역을 해야 힘이 납니다. 모든 행사를 금하고, VIP를 품고 섬기는데만 집중하라고 하면 이들은 오히려 피곤을 느낍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에너지를 발산할 기회를 주어야합니다. 하고 싶어 하는 사역이나 활동을 억제하지 말고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휴스턴 서울 교회에서는 매년 연말에 초원 대항 장기 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준비하느라고 목장 사역에 지장이 생기는 것을 발견하고 폐지하려했습니다. 그때 몇 목자들이, 각 목장에서 위해 기도하는 VIP들이 목장 모임이나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송년 잔치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목표를 바꾸었을 때 ‘끼’가 있는 사람들의 재능이 발휘되고, 이를 계기로 많은VIP들이 목장이나 주일 예배에 참석하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넷째는 담임 목사 자신이 변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가정교회를 떠나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 때문이 아니라 목사 때문에 떠납니다. 예를 들면, 많은 목사님들이 감사 표현에 인색합니다. 한 마디 감사의 말, 한 줄의 감사의 글이면 되는 데 이런 것들을 안 해서 교인들에게 섭섭함을 심어주고 교회에 작은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빌미로 떠나게 만듭니다.
이 외에도 성도들이 얼마나 바쁘고 피곤한 삶을 사는지를 몰라주는 것 같은 언행, 중요한 결정을 다른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고 내리는 습관, 과다한 외부 활동이나 취미 생활 등 … 얼마든지 고치고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을 배째라 식으로 고집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떠나갑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을 얻고자 하여 유대인이 되고, 헬라인을 얻기 위하여 헬라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고전 9:19-21).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하여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고, 교인들을 불편케 하는 습관을 바꿀 수 있어야합니다.
가정교회가 성장을 안 하면, 로마 제국을 뒤엎은 초대 교회가 아니라 순수만을 고집하다가 역사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쿰란 공동체처럼 됩니다. 가정교회가 성장하여 영향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인들을 귀하게 여기고, 품고, 기다려 주고, 무엇보다도 목회자 자신이 바뀔 각오를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