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내는 야당입니다. 일반교인들의 마음을 잘 알아서 대변해 줍니다.
얼마 전 설교 후에 있는 성령 임재 체험 시간에 관해 말했습니다. 설명이 너무 길다는 것입니다. 또 성령님의 만지심을 기다릴 때 찬양하는 것도 과연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아내가 그렇게 느끼면 성도님들도 그렇게 느낄 것 같아서 설명을 드립니다.
저는 교회에 처음 참석하는 분들을 제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분들을 배려하여 반복적으로, 길게, 상세하게,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교회를 처음 방문하신 분들은 새교우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해도 되지만, ‘친교실 가는 왼쪽에 있는 새교우실’이라고 말을 덧붙이거나, “침묵가운데 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고 끝내도 될 것을 “대화를 나누실 분들은 본당을 나선 다음에 대회를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는 이유도 처음 방문한 분들을 배려해서입니다. 저도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힘듭니다. 설명을 줄이든지 생략하고 싶지만, 이런 분들을 위해서 같은 말을 매주일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시간은, 성령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우리를 만져주실 것을 간구하면서 예배를 시작했으니까 우리를 만지주실 시간을 드려야한다고 생각해서 넣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침묵 가운데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1분 정도 침묵 가운데 만지심을 기다리고 제가 찬양을 시작하여 찬양가운데 계속 만지시기를 기다립니다. 찬양을 큰 소리로 하지 않는 이유는 성령님이 역사하시는데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봐 그럽니다.
하나님의 임재 체험 시간에 무엇을 기대할지 길게 설명하는 이유도, 예배에 처음 참석하신 분들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라는 용어조차 익숙지 않은 분들에게 무엇을 기대해야하는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일마다 기대가 약간 다르고 따라서 설명 내용도 조금씩 다릅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성령님의 터치를 맛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서너 명만이라도 하나님이 만지심을 맛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외부 집회를 인도할 때 참석 인원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이 준비시켜 놓으신 서너 사람의 인생이 내 메시지로 인하여 바뀔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구인지 모를 이 서너 명을 향해 저는 설교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신 분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시간이 지루하더라도 그 주일에 성령님의 만지심이 필요한 서너 분들을 위하여 참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