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에서 목자로 섬기다가 한국에 나가 국립 암센터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진수 집사님이 전화를 했습니다. 휴스턴에 볼 일이 있어 들렸다가 전화로 문안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집사님이 한국 나갈 때, 자녀들이 계속 살 수 있도록 집을 팔지 않고 두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아, 자녀들도 볼 겸 오셨군요.”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이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집은 팔았고요, 애들은 지금 피츠버그에 있습니다.” 그때야, 집을 팔았다고 아내가 오래 전에 말했던 것이 생각나며, 엉뚱한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얼마 전, 목장을 방문해서는 최근에 등록한 한 목장 식구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 분이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말했습니다. “세 번째 물으시는 데요.” 생각해보니 교회 첫 방문 때 새 교우실에서 물어봤고, 생명의 삶 수강할 때 친교실에서 우연히 같이 앉아 식사하게 되서 물어봤고, 이번이 세 번째 묻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고맙게도 이 형제는 다시 한 번 상세하게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해주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아내도 기억력이 쇠퇴해 갑니다. 둘 다 기억을 못하니까 좋은 점도 있습니다. 전에 했던 얘기를 다시 해도, 처음 말하는 것처럼 열심히 말하고, 처음 듣는 것처럼 재미있게 듣기 때문입니다.
성도들 이름을 제가 잘 기억하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제 기억력이 좋은 줄 아는데, 아닙니다. 노력해서 그렇습니다. 새벽에 기도하다가 성도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으면 즉시 컴퓨터에 들어가서 확인합니다. 생명의 삶이 개강하면 수강하는 사람들 사진과 이름을 놓고 열심히 암기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강 후 두 주일정도 지나면 얼굴과 성명을 기억하게 됩니다. (문제는, 졸업식을 마치고 나면 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기억력이 쇠퇴해 가는 것을 속상해하는 대신, 잊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합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시 전자수첩에 적거나 녹음을 합니다. 만날 약속을 할 때에는 즉시 만날 사람, 장소, 시간을 스케줄에 입력합니다.
우리 교인들은 수년전에 한 설교나 예화를 기억할 정도로 기억력이 탁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번 했던 질문을 또 하거나, 말 해놓고 안 했다고 잡아떼거나, 말 안 하고서도 했다고 우기면, 짜증이 나기도 하겠지만, 자신들도 나이 들면 나처럼 되리라는 것을 기억하고, 한 번 물은 것을 또 묻더라고 다시 한 번 답해 주고, 엉뚱한 말을 하면서 고집을 피우더라도 증거를 대서 차근차근 납득시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