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0일 작성된 게시물이 관리자에 의하여 목회자코너 게시판에서 이곳으로 복사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이 행복 지수를 측정한 결과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 국민들의 행복 지수가 높고, 경제적으로 낙후한 국가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낮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거꾸로 부자 나라 국민들 행복 지수가 낮았고 가난한 나라 국민들의 행복 지수가 오히려 높았습니다.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방글라데시였습니다.
제가 다닌 북가주에 소재한 골든게이트 신학원이 위치한 곳은 부자들이 밀집해서 사는 지역입니다. 아름다운 그곳이 황무지일 때에 신학교에서 싸게 땅을 구입하여 건물을 지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지역이 점점 개발되면서 이제는 유대인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습니다. 신학교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집집마다 수영장과 테니스 코트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지역이 전국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곳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행복하냐 안 하냐는 인생의 기대치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불행하고, 적은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순전 기독교’를 쓴 ,C.S. Lewis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의 행복 정도는 인생을 호텔로 보느냐 포로수용소로 보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호텔로 생각하면 너무나도 불편한 곳입니다. 그러나 포로수용소로 생각하면 너무나도 편한 곳입니다.
저는 행복지수가 높은 편입니다. 육이오 전쟁 당시의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였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꽁보리밥이나 조밥을 먹었던 기억, 한 방에 10명의 사람들이 찡겨 자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음식을 먹어도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 자체를 감사하게 되고, 잠자리에 들 때에도 폭탄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지 않고 잠 잘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자녀들은 부모만큼 행복하지는 못합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기는 했지만 가난해 보고 배고파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감사함이 적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감사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불평하면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차이는 기대치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갑니다. 자신이 누리는 축복이나 사역의 기회를 은혜로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하고, 이것들을 권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불평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