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제가 담임목사 사임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겨울 부흥회 강사로 오신 분이 성령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말씀이라고 하면서 마지막 집회에서 계 3:14-21을 주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주님께서 네가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하니 뱉어버리겠다는 구절입니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 그러면 누구 때문에 우리 교회가 차지도 뜨겁도 않은가? 평신도 지도자들 때문은 아닙니다. 뜨겁게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담임 목사인 저에게 주신 말씀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너무 원칙을 고집하다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교회를 뜨겁게 불 지필 수 있는 사람에게 목회 자리를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임을 경솔하게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확실한 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강사님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향해서도 이런 식의 도전적인 메시지를 준 적이 있는지 물어봐서, 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싸인으로 받겠다고 마음먹고 강사님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공동체에도 강한 메시지를 주시는 분이면 하나님 음성으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사님은 그런 적은 없었다고 하면서 메시지의 핵심이 “차지도 뜨겁지도 않고(16절)”의 경고보다는 “나와 함께 내 보좌에 앉게 하여 주겠다(21절)”의 격려에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를 사임한다는 생각은 접었지만 제가 성령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는 생각은 지속되었습니다. 전에 읽었던 성령 사역에 관한 책도 다시 읽게 되었고, 요즈음 한국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성령 사역자들의 저서도 읽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를 성령으로 뜨겁게 만들까? 성령 사역자를 모셔다가 집회를 가지는 것이 머리에 떠오르는 첫 번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른 선택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은사 집회를 갖고 나면 영혼 구원보다 은사 자체에 더 관심을 쏟게 되고, 섬기는 사람들이 무시되고 은사 받았다는 사람들이 스타로 부상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님이 주신 사명에 집중하면 필요한 은사를 주실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미 우리 교회에서는 목장에서 기도를 통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고, 홀로 기도하다가 방언을 받기도 하고, 다양한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소원을 좇아,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신약 교회를 꾸준히 추구하면, 신약 교회에 나타났던 성령님의 역사가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