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에서는 마태 28:19~20에 근거하여 ‘영혼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것’에 교회 존재 목적을 둡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그런데 많은 가정교회 목사들이 교회 존재 목적을 ‘제자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제자로 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개역 성경과 새번역이 ‘제자로 삼아’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삼는다’는 신분의 변화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사장님 댁 아들이 가정부와 사랑에 빠져 결혼식을 올리게 될 때, ‘가정부를 며느리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신분 격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로 삼아’로 번역된 원전의 헬라 단어는 단순한 신분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제자로 만들다’ 혹은 ‘제자가 되게 하다’라는 강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삶 전체에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아시다시피 마태 28:19~20 대 사명에는 등장하는 헬라어 동사 4개가 등장합니다. ‘가서’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지키도록 가르쳐라’. 이중에 하나만이 명령형이고 나머지는 분사입니다. 유일한 명령형은 ‘제자로 삼아’입니다. 그러므로 직역하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가서, 세례를 주고, 지키도록 가르쳐서, 제자로 만들어라”
왜 개역 성경 번역자들은 ‘제자로 만들어라’ 대신에 ‘지키도록 가르쳐라’를 명령형으로 바꿔 사용했을까? 교회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교회를 한자로 가르칠 교(敎)를 사용하여 敎會로 표기합니다. 즉 가르치는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사명을 ‘가르쳐라’로 끝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헬라어 문장에서, 분사를 명령형으로 번역할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러면 ‘제자를 만들어라’는 ‘제자로 삼아’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토리 신부님이 교회를 가르칠 교(敎) 대신에 사귈 교(交)를 사용하였으면 교회 본질이 더 잘 표현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이랬더라면 대사명도 직역을 하여 마지막 부분을 ‘가르쳐라’ 대신에 ‘제자로 만들어라’라고 번역했을 것입니다.
주님이 사도들에게 명령한 것은 ‘제자로 삼아라’가 아니고 ‘제자로 만들어라’였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교회를 추구하는 가정교회 목회자들은 교회 존재 목적을 ‘영혼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이 아니라 ‘영혼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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