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제게 한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치유와 축사(逐邪) 같은 성령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목회자들의 교회가 부흥하는 경우가 왜 드문가? 교회가 부흥하는 듯하다가 무너지거나, 깨어지는 수가 많은데, 왜 그럴까?’
하나님께서 ‘기사와 이적’을 허락하시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기사와 이적은 지도자에게 영적인 권위를 부어주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공동체가 처음 세워질 때는 강력하게 나타나지만, 지속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사도행전 기록을 보면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 기사와 이적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교회가 세워진 후에도 계속해서 그랬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서신서 중 고린도전서가 성령님의 신비한 은사를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지만, 긍정적이기보다는 은사 남용을 꾸짖고 경계하는 데 더 가깝습니다.
제가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아 신학교에 입학 한 후, 신학공부와 더불어 집중했던 것은 성령 은사 개발이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하시던 일이 재현 될 수 있어야 하는데, 저는 설교를 하고 말씀을 가르치지만, 치유나 축사는 어떻게 하는지 몰랐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치유와 축사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서, 책도 읽고, 세미나에도 참석하며, 은사 집회도 찾아다녔습니다.
은사를 갈구하니 하나님께서 ‘기사와 이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휴스턴서울교회에 부임한 이후 예배 중에 극적인 치유도 허락하셨고, 저의 짧은 명령에 귀신이 떠나기도 했고, 오랫동안 아기를 기다렸던 자매에게 예언의 말씀을 준 후 임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가 치유, 축사, 예언과 같은 은사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일어나서입니다.
가정교회가 성경적인 교회를 추구한다면 어쩌면 기사와 이적이 반드시 일어나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명령을 따르거나, 기대에 맞추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신의 집회에 참석하면 병을 고친다, 귀신이 나간다, 방언을 한다 등의 약속을 하는 것은 성령님을 겁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대대로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결과를 조작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은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사역자나 교회가 무너지는 이유입니다.
성령님은 바람과 같습니다. 틀에 넣을 수 없고, 같은 방법으로 일하시는 법도 없으십니다. 제가 ‘생명의삶’을 인도할 때 성령 체험 시간에, 어떤 때에는 쓰러지는 사람들이 많았고, 어떤 때에는 육신의 치유가 많았고, 어떤 때에는 조용한 내적 치유가 많았습니다. 성령님이 나타나심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성령체험 시간마다 기대감과 더불어 두려움을 갖고 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초자연적인 역사가 모두 극적이지는 않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예수를 믿거나 변할 수 없는 사람이 변하는 것도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기사와 이적도 있어야겠지만,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사는 교회를 세우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고, 기도하면 크고 작은 기적이 일어나며, 한계를 뛰어넘는 헌신이 생활화되고,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동역하고, 교인들 간의 갈등이 확대되지 않고 저절로 사라지는 교회입니다.
휴스턴서울교회는 부족한대로 이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가 다음의 원칙을 붙들고 목회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교회에서 일어나기를 갈구했습니다. 정기적으로 금식했고, 부임 초기에는 강단에서 철야 기도도 자주 했습니다.
2. 성경의 단순한 이해와 단순한 순종을 신앙의 기초로 삼았습니다. 성경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았고, 아니라고 하면 아닌 줄 알았고, 하라고 하면 했고, 하지 말라면 안 하려 했습니다.
3.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을 유일한 목회 방법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인지 확인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결론 내리면 두말없이 순종했습니다.
4. 성령충만을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생각했습니다. 한순간이라도 성령 충만하지 않으며 죄에 넘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손님